어떤 이름은 사람을 흥분시키고 어떤 이름은 고개를 숙이게 하고
어떤 이름은 살아 있음을 부끄럽게 합니다.
'전태일'은 언제나 저를 부끄럽게 하는 이름입니다.
그가 한창 푸른 나이에 스스로를 불사른 지 50년이 되어가지만
그의 희망은 아직 현실이 되지 못했으니까요.
아래는 경향신문 조운찬 논설위원의 칼럼입니다.
[여적]전태일기념관
1970년 10월7일자 경향신문은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이라는 제목의 사회면 톱기사를 통해 평화시장 피복공장의 열악한 상황을 보도했다. 2만여명의 노동자들이 햇빛도 들지 않고 허리도 펼 수 없는 작업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은 이와 함께 노동청이 실태조사에 나서 근로기준법 위반업체를 모두 고발키로 했다고 전했다.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평화시장 노동실태를 알린 최초의 기사였다.
한 달여 뒤인 11월14일, 경향신문은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씨의 분신 소식을 전했다. 전씨가 “기업주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며 휘발유로 <근로기준법 해설>을 태우려다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앞서 보도대로 근로감독만 제대로 했어도, 노동조합만 있었어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전씨는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에게 자신이 못 이룬 일을 이뤄달라고 부탁했다. 이소선 어머니는 아들의 뜻을 받아 청계피복노조를 창립했다. 그러나 군사독재정권의 노조 탄압·해산을 딛고 합법화를 쟁취한 것은 1987년 6월항쟁 직후였다.
전태일 열사가 숨진 지 반세기가 지났다. 경향신문은 노동절인 1일자 머리기사로 노동권 무풍지대인 어린이집 교사들의 힘겨운 노조 만들기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해 말 현재 한국 노조 가입자 수는 208만9000명, 조직률은 10%대에 불과하다. 같은 날 서울신문은 지난해 2월 주 52시간제 통과 이후 연말까지 과로사 산업재해 신청건수가 102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과로사의 대부분은 영세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노조 만들기 어렵고, 과로사에 이르도록 장시간 일해야 하는 노동 현실은 7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노동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서울 청계천 수표교 인근에 전태일기념관이 개관했다. 서울시가 세운 6층 기념관은 전태일의 생애와 당시의 피복공장의 상황을 재현한 전시장, 노동권익센터, 노동단체 네트워크 공간인 노동허브 등으로 꾸며졌다. 건물 정면 외벽에는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를 새겼다. 글 서두에서 전태일은 묻는다.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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