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생각라테> (2018년 1월 2일)

divicom 2018. 1. 2. 07:38

모든 글은 일기이고 편지입니다. 글이 책으로 되는 데는 운명이 개입합니다.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하는가 하면 

그저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여러 권의 책을 내는 일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책을 내고 나면 늘 부끄러워 앓곤 합니다.


2017년 세밑 제 여섯 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생각라테>.

누군가 이 책에서 자신을 발견하거나 위로 받는다면 제 부끄러움이 조금은 덜어질까요?

아래에 그 책의 머리글을 옮겨둡니다.



라테, 생각, 그리고 타나토스의 망토

 

라테 좋아하세요? 저는 매우 좋아합니다.

 

봄가을 바람에 마음이 흔들릴 때

한여름 더위에 영혼마저 지칠 때

영하의 추위에 코와 손이 빨갛게 얼 때

아름답고 맛있는 라테를 마시면

살아있는 기쁨을 느끼는 것은 물론 희망까지 품게 됩니다.

 

라테(latte)는 본래 우유(milk)’를 뜻하는 이탈리어인데,

우리말 우유牛乳소의 젖을 뜻하지만

‘latte’‘milk’소의 젖을 포함한 모든 을 뜻합니다.

은 갓 태어난 아기가 다른 음식으로 영양소를 취할 수 있기까지

그를 살리고 키우는 생명의 진액입니다.

 

젖을 비롯해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우리의 인생을 닮았습니다.

어머니의 젖만 먹을 때는 오직 먹고 자고 자라면 되지만

온갖 음식을 먹는 어른이 되면 일상이 음식만큼 복잡해집니다.

맵고 짜고 달고 시고 쓴 맛에 웃고 울며 나이를 먹는 것이지요.

 

과학기술의 발달 덕에 겉모습은 더디게 늙지만

복잡해진 생활이 초래한 생각 상실은 정신의 노화에 가속도를 붙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만들었지만 21세기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생각은 오래 전 집을 나가 소식 없는 가족이 되었으니까요.

 

지금 우리 사회는 부자가 되기 위해 질주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운동장과 같습니다. 낙엽의 향기는 옷깃으로 스미고

파란 하늘 흰 구름이 황홀해도 그 모든 것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별처럼 빛나다가 서서히 시드는 꽃들, 눈물을 씻어주는 빗물,

지친 세상을 안아주는 석양, 우리의 첫 얼굴 같은 눈길...

우주는 우리에게 끝없이 선물을 보내지만

우리는 너무 바빠 그 선물을 들여다볼 시간조차 없습니다.

어쩌면 타나토스의 망토 자락이 보일 때에야

그 선물을 기억해내고 울먹이게 될지 모릅니다.


이 책은 그렇게 우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종이비행기이며,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생각을 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입니다.

 

무엇을 먹든 먹고 나서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입안에는 커피의 향기만 남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 키에르케고르, ‘커피 칸타타를 작곡한 음악의 아버지요한 세바스찬 바흐

프랑스 문학의 거장 오노레 드 발자크, 힘겹고 짧았던 27년 생애를 마감한 지 8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시인 이상... 그들은 왜 그리 커피를 좋아했을까요

그들이 커피를 마시지 않았어도 그렇게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을까요?

 

블랙커피가 진리처럼 버겁다면 우선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으로 시작해보세요

갈색 커피 바탕에 우유로 그린 꽃이나 나무, 하트 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그림을 그려준 바리스타와, 그 커피가 우리에게 올 때까지 거쳤을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손과 삶을 생각해보시지요. 한 잔의 라테가 영혼에 젖을 주어 타인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키우는 걸 느끼실 겁니다.

 

이 책의 글들은 대개 제가 20123월부터 201710월까지 진행한 tbs 교통방송(FM95.1MHz)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들여다보기코너를 위해 써서 방송에서 읽어드렸던 것들입니다

서울셀렉션 김형근 대표가 아니었으면 이 글들은 책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책에는 바쁘게 달리느라 생각을 잊은 사람들에게 생각으로 가는 길을 찾아주고 싶다는 김 대표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김 대표님과, 이 책의 모든 문장을 정성껏 들여다보며 다듬어주신 서울셀렉션 김유진 팀장님께 감사합니다

이 책의 문장들이 라테 한 잔과 생각 한 줌으로 이어져 마침내 사랑에 기여하기를 기원합니다.

 

                                                                                                2017년 겨울

                                                                                                                                              김흥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