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서귀포의 비극(2016년 3월 29일)

divicom 2016. 3. 29. 11:36

오늘 자유칼럼에서 보내준 김수종 선배의 칼럼을 보니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오릅니다. 제가 이럴 때 제주도 

출신이신 선배는 어떨까... 한숨이 나옵니다.  20세기 중후반부터 '발전'과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나라 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는데, 21세기가 된 지금도 이런 후진적 행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나쁜 정부와 어리석은 백성을 어찌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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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이렇게 망가진다

2016.03.29


제주도 자동차 여행의 묘미는 탁 트인 시야입니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자동차 여행을 하면 대개 한쪽 눈엔 한라산이, 또 한쪽 눈엔 수평선이 들어옵니다. 한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가 고향인 나는 가끔 이 섬에 갈 때마다 렌터카를 타고 섬 한 바퀴를 돌아봅니다. 서울서는 운전대 잡기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제주도에선 차도 잘 빠지고 시야가 트여 운전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며칠 전 일주도로를 타고 서귀포 일대를 달리다가 매우 놀랐습니다. 갑자기 공사 중인 고층 아파트단지가 성벽처럼 시야를 가렸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으면 나지막한 오름이 보이고 그 너머로 한라산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인데, 오름도 한라산도 보이지 않고 콘크리트 건물이 모든 시야를 막아버린 것입니다.

서귀포 혁신도시 건설현장입니다. 국토교통인재개발원, 국립기상과학원, 국세공무원교육원 등 아홉 개 정부기관 청사가 고근산 기슭을 따라 하나하나 완공되어 입주하고 있습니다.

한라산 기슭을 따라 경사도가 바다로 완만하게 흘러내린 이곳에 지은 고층건물은 스카이라인을 파괴함으로써 미학적으로도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인근 동네와 도심의 한라산과 태평양 조망을 완전히 막아버리게 됩니다.
정부 기관 청사들은 비교적 경사도를 거스르지 않고 나지막하게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주변에 건설되는 주택은 서울 변두리와 같이 고층아파트로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마치 하모니카를 세워놓은 것 같습니다.

제주도의 스카이라인을 완전히 훼손하는 도시건축을 선도한 것은 바로 공기업인 LH공사입니다. 한국의 주택문화를 선도하는 공기업으로서 아무 고민도 없이 평평한 산업도시에 빌딩을 세우듯이 제주도를 요리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부영건설이 더 큰 빌딩숲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근처의 강정해군기지 완공으로 혁신도시 주변은 더욱 도시화가 진행될 것이 뻔합니다. 이제 이곳의 스카이라인은 바다와 오름이 아니라 고층아파트의 각진 모습으로 그려지는 게 막을 수 없는 추세가 될 것 같습니다.

아침에 중문해수욕장 모래사장을 산책하다가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아름다운 절벽을 부수고 무슨 공사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공사판 노동자에게 무슨 공사냐고 물었더니 절벽이 무너져 내려 보강공사를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절벽 꼭대기는 바로 그 유명한 호텔신라의 ‘쉬리언덕’입니다. 1999년 영화 ‘쉬리’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던 곳입니다. 중문의 백사장과 태평양이 시원히 내려다보이는 15~20미터 높이의 주상절리의 절벽은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쉽게 무너져 내릴 곳이 아닙니다. 만약 자연적으로 무너져 내렸다면 그대로 방치하는 게 자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호텔이 절벽 꼭대기에서 무슨 공사판을 벌이다가 주상절리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금 서귀포 해안선 70킬로미터는 공사장과 같습니다. 땅값 폭등은 고층 빌딩을 촉진하게 마련입니다.
스카이라인도 파괴하고 현무암 해안절벽도 마구 부수는 파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청와대부터 앞장서서 규제완화를 외쳐댑니다.
자연과 도시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는 규제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