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사랑, 나비 (2013년 6월 30일)

divicom 2013. 7. 1. 16:54

오늘 아침 tbs '즐거운 산책'에서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고 영화 '모정(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의 주제가를 들었습니다. 주제가의 제목도 영화의 제목과 같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하는 사랑, 계산할줄 모르는 사랑보다 오래 기억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잊지 않길 바란다면 큰 사랑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 부처님처럼 '불멸'할 수 있습니다.


'모정'은 1955년에 발표된 영화입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에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때는 좋은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면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가 '단체 관람'하게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외국 사람의 입에서 나온 영어 문장이 처음으로 제 귀로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그건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하는 말 "I'll show you how I live."였습니다. 자막에는 "제 방을 보여드릴게요"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사는지 보여드릴게요"라고 말하는데, 왜 "제 방을 보여드릴게요'로 번역을 할까, 한동안 궁금했습니다.


이 영화는 홍콩에 사는 한수인(Han Suyin)이라는 중국계 영국인 여 의사와 종군기자의 사랑을 -- 실화입니다 -- 영화화한 것입니다. 종군기자인 남자가 하필 6.25전쟁을 취재하러 우리나라에 왔다가 우리나라의 전장에서 죽습니다. 영화를 볼 때 어린 마음에도 참 미안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저 기자가 죽지 않았을 텐데, 그랬으면 두 사람이 오래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제 칼럼 '들여다보기'에서는 나비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여린 날개로 햇살 바다를 헤엄치는 나비... 그의 몸짓에도 사랑이 있습니다. 아래는 '들여다보기' 원고입니다.



나비


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날아옵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오래 전 할머니가 부르시던 노래가 귓가를 울립니다.

 

어떤 꽃을 보고 왔을까... 주변을 둘러보아도 느티나무뿐입니다.

저 아랫집 울타리에 넝쿨장미가 보이지만

엄지손톱보다 작은 날개로 거기까지 가다가는

도중에 지쳐 떨어져 검은 길의 노란 점이 될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둘러보니

나비는 온데간데없고 아스팔트만 검게 이글거립니다.

 

햇살에도 무게가 있는지 몸이 자꾸 무거워집니다.

느릿느릿 걷다 보니 오 분도 안 되어 그늘이 그립습니다.

건물 밖으로 난 층계 아래 좁다란 그늘,

얼른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누군가 놓아둔 작은 의자가 친구처럼 반갑습니다.

 

의자에 앉으니 걸을 땐 보이지 않던 화단이 보입니다.

푸른 가지 끝마다 하얀 꽃들이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사람들 같습니다.

정물화 같은 풍경이 살짝 흔들립니다.

조금 전에 보았던 노랑나비입니다. 아니, 오래 전 할머니와 함께 보던 나비입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혹시 이 나비는 제 할머니의 새 몸일까요?

며칠만 있으면 할머니의 제삿날입니다. 반가운 해후의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