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일본의 뒷걸음질 (2013년 5월 27일)

divicom 2013. 5. 27. 08:40

오늘 아침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이 보내준 황경춘 선생님의 글입니다. 올해 여든아홉이신 선생님은 일제를 겪으신 언론인으로 지금 이 나라 대다수 국민이 알지 못하는 일본의 진면목을 아시는 분입니다. 황 선생님의 글이 잠든 한국인들의 영혼을 깨우고 무지를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 옮겨 둡니다. 황 선생님, 감사합니다. 부디 오래 건강하시어 저희를 가르치고 이끌어 주소서!



www.freecolumn.co.kr

‘어떤 일본’을 되찾자는 건가?

2013.05.27


“일본을 되찾자”라는 구호로, 작년 말 3년의 야당 생활 끝에 재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자민당은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도 유권자에 가장 인기 있는 경제재건책과 이 ‘강한 일본’이라는 공약을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아베가 원하는 ‘강한 일본’이란 어떤 일본일까요? 그건 경제 부국이 아닌, 전전(戰前)의 일본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당당히 자기주장을 말할 수 있는 일본을 뜻하는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우리로부터 같은 유학(儒學)을 전래 받은 일본이지만, 그들은 한때 난숙(爛熟)한 문약(文弱)정치와 혼란을 거듭한 ‘전국시대’를 거쳐 마침내는 무인(武人)통치의 봉건 쇄국(鎖國)체제로 나라를 안정시켰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우리보다 반세기 앞서 개국을 결정할 당시, 인구 3,500만의 일본은 그 좁은 땅에 274명의 세습 무인 영주(領主)가 200만의 무사(武士)를 거느리고 통치하는 봉건 국가였습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 네 신분계급의 맨 위에 있는 ‘사무라이(侍 - 무인)’ 가 ‘다이묘(大名)’라 불린 영주 밑에서 ‘한(藩)’이라 불린 각자의 ‘영토’를 다스렸습니다.

만세일계(萬世一系)를 자랑하는 천황을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고, 실제 정치는 봉건제도의 우두머리인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의 ’쇼군(將軍)‘이 맡고 300명에 가까운 영주가 지방 정치를 담당한 무단(武斷) 봉건제였습니다.

1869년의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왕정복고(王政復古)한 천황이 개국을 선언하고 서방문명을 재빨리 도입한 일본은 아시아 최초의 근대국가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원이 부족한 그들이 선택한 길은 군사력을 앞세운 제국주의였습니다.

청국과 제정 러시아를 상대로 힘겹게 치른 두 번의 전쟁 끝에, 조선을 강제 합병하고 만주대륙으로 침략의 마수를 돌려, 마침내는 연합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시작합니다. 민주주의의 꽃이 완전히 피기 전에 천황을 앞세운 국수주의 군 지도자가 국정을 장악하여 서서히 패망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패전 후, 연합국이 주선한 민주 평화 헌법으로 다시 일어선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지금, 옛날을 그리워하는 극우 보수 세력이 다시 꿈틀거리고 국수주의자들이 세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 ‘무라하치부(村八分)’라는 오래된 풍습이 있었습니다. 약간의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가진 그들은 일본민족을 단일민족이라고 믿고 자랑하여, 화합과 단결을 중시하였습니다. 이단자(異端者)를 극히 싫어했습니다. 농촌 마을 같은 데서 법이 아닌 관행으로 이단자를 제재한 것이 ‘무라하치부’였습니다.

농촌에서는 관혼상제(冠婚喪祭)나 농사일 등에서 품앗이가 절실한 작업이 열(10) 가지 있었는데 이 중 장례와 소화(消火)작업을 뺀 나머지 일에서 마을 사람의 도움을 금지하는 벌이 ‘무라하치부’였습니다. 이 말은 현재에도 따돌림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전후에도 지방에서 법에 없는 이런 따돌림을 받았다고 소송을 일으킨 예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몇몇 정치가들의 역사 인식에 관한 발언에 당내에서 모나게 반박이나 충고를 안 하는 것도 집단에서 이단을 기피하는 일본인의 이런 특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일본 사회에는 신분 차별을 유별나게 받아온 계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백정에 해당하는 직업에 종사해 온 ‘부라쿠(部落)’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부라쿠’란 단어는 ‘차별’과 동의어로 일종의 금기어로 되어 있습니다. 근래 부쩍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겐칸(嫌韓)’데모에서 이 ‘부라쿠차별’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 걱정입니다. 

'Hate Korea(한국 증오)‘ 운동의 중심인물이며 최근 위안부 망언으로 유신의회로부터 제명처분을 받은 니시무라 신고(西村悟) 의원은 수년 전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당시 민주당 대표를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며 비방하였습니다. 일부 반한 인터넷에서는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를 "한국에서 낳은 아이를 제주도에서 키우고 있다"고 중상하는 한편, 간 총리가 국회 답변 도중 물 마시는 모습이 한국인이 물 마시는 동작을 닮았다고까지 흉보고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 부인의 걸음걸이가 팔자(八字) 걸음으로 한국인을 닮았다고 야유하는 글과 동영상도 올랐습니다.

이런 비상식 인신공격은 제가 어릴 때 일본에서 목격한 부라쿠민 차별 광경을 떠올리게 하여 몸이 오싹했습니다.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라 하여도 이런 무차별 민족모욕 행위에 따끔한 일침을 주지 못하는 일본 정부나 여당의 대응이 불만스럽습니다.

부라쿠차별을 반대하는 ‘동화운동’ 등 많은 인권 운동이 있었지만, 부라쿠 출신자의 사회 진출에는 여전히 장애가 많은 듯, 정계에서는 전 자민당 간사장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외에는 두드러지게 이름난 부라쿠출신 정치가는 없었습니다.

요즘 위안부 관계 발언으로 말썽이 많은 유신의회 공동대표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은 어릴 적에 사별한 폭력단원인 아버지가 부라쿠와 관련이 있었다는 소문이 보도된 적이 있으나, 민감한 사항이라 소문을 계속 추적한 보도는 없었습니다. 

아베 총리와 하시모토 시장 외에 지금 일본정계 화제의 중심인물이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입니다. 두 아들이 자민당 국회의원으로 있는 이 80세 노욕(老慾) 정치가는 지난 연말 총선 전 도쿄도지사 자리를 버리고 정책이 완전히 일치하지도 않는 하시모토의 당에 공동대표로 입당하여 국회로 돌아왔습니다. 

유명한 국수주의자고,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를 존경한다고 말할 정도로 민족차별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재군비를 위한 헌법 개정 필요성에는 아베 및 하시모토와 의견을 같이합니다. 아 세 사람이 되찾고 싶은 일본이란, 어느 때 어떤 형태의 일본인가를 일본 유권자가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