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킬링곡선(2013년 5월 24일)

divicom 2013. 5. 24. 08:32

이 블로그의 글들은 몇 개의 갈래로 나뉘어 실려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유칼럼입니다. 자유칼럼은 인터넷 칼럼사이트(www.freecolumn.co.kr)로 저도 그곳에 삼년 간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자유칼럼에서는 새 칼럼을 이메일로 보내주는데, 아래의 글은 김수종 선배님이 쓰신 글입니다. 김 선배는 제 신문사 선배이시고 현재는 제주도 출신 대학생들의 서울 생활을 돕는 탐라영재관 관장으로 계십니다. 김 선배는 뛰어난 기자였을 뿐 아니라 환경문제 전문가입니다. 아래의 글도 환경문제를 다룬 것인데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생각되어 옮겨 둡니다.


킬링곡선

2013.05.24

아직 5월인데 30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일찍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킬링곡선'을 이슈로 떠올려 보겠습니다. 웬 살인 얘기냐고 할지 모르나 그런 게 아닙니다. 영어로 'Keeling Curve'를 말합니다. 발음에 충실하면 '키일링'이라고 장음을 내야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언어 습관 상 '킬링'(Killing)이라고 발음합니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 측정의 선구자인 찰스 킬링(Charles Keeling)의 이름을 따서, 이산화탄소 농도 추이를 그래프화한 것이 바로 킬링곡선입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 터진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성희롱 사건으로 언론이 시끌벅적하던 와중에 국내 신문의 속 페이지에 조그맣게 보도된 뉴스가 있었습니다. 
‘하와이 마우나로아 화산에서 측정한 이산화탄소(CO2) 농도가 400ppm을 돌파했다.’란 요지의 보도였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윤창중 사건에 관심을 쏟으며 이 보도를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거나, 보았더라도 '공기가 나빠지는구나' 하는 정도로 흘려들었을 것입니다. 

‘ppm’이란 단위가 사람들의 머리를 헷갈리게 합니다. ppm은 ‘parts-per-million’의 약어로 100만분의 1을 의미합니다. 보통 공기나 물속에 포함된 미량의 물질을 측정하는 단위로, 우리가 익숙하게 듣는 경우는 오염 물질의 농도를 말할 때입니다. 
그러니까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이란 뜻은 공기를 이루고 있는 물질의 질량 단위 100만개 중에 400개가 이산화탄소라는 뜻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공기는 99%가 질소(78.1%)와 산소(20.9%)로 이뤄져 있습니다. 나머지 1% 속에 아르곤, 이산화탄소, 네온, 헬륨, 메탄, 크립톤, 수소, 오존 순으로 포함됩니다.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분량 0.04%, 실로 미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성비가 적은 이산화탄소지만 그 온실효과는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아이러닉하게도 인류는 현대문명을 발전시키면서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가고 있습니다. 바로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그 속에 함유된 탄소와 공기 중의 산소가 결합해서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서는 세계경제가 발전하고 확장될수록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높아만 갑니다. 

미국 UC샌디에이고 산하 스크립스해양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화학자 찰스 킬링 박사는 1958년 하와이 마우나로아 화산 중턱 해발 3,400m 지점에 세워진 미국 국립해양관측소에서 수집한 공기를 분석하여 이산화탄소 농도가 315ppm임을 밝혀냈습니다. 그 농도는 1959년에 316ppm, 1960년에 317ppm으로 매년 1ppm 정도 증가하다가 최근에는 연간 2ppm 이상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9일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돌파했으니 55년 동안 85ppm이 상승한 것입니다. 
킬링 박사가 1958년부터 해마다 상승해온 이산화탄소 농도의 추이를 그래프로 표시한 것이 바로 ‘킬링곡선’입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지구과학자들은 400ppm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숫자로 예상했지만, 막상 그 숫자가 현실화되고 보니 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과거 지구가 겪었던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고기후학(古氣候學)은 과학자들의 위기감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남극의 빙하에 갇혀있는 공기 기포를 측정하여 과거 80만년 동안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정확하게 알아냈습니다. 이 측정값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 80만 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는 180~280ppm 범위에서 변동했습니다. 이 범위에서만도 뉴욕이 수백 미터의 빙하에 덮이는 엄청난 기후변화를 겪었습니다. 
산업혁명의 불이 석탄에 붙기 시작한 1870년 280ppm이었던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하기 시작하여 불과 150년 만에 400ppm을 돌파한 것입니다. 중국과 인도 등 인구대국까지 가세하여 땅속에 묻혀있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경쟁적으로 채굴하여 사용하면서 소위 킬링곡선은 가파른 상승곡선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추세로 간다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까지 도달하는 데 25년밖에 남지 않았고, 2060년이면 500ppm에 도달할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450ppm을 기후재앙을 그나마 다스릴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예측이 맞게 된다면 2050년을 전후해서 지구의 기후 평형이 깨지는 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500만~300만 년 전 지질시대를 '신생대 제3기'라고 부릅니다. 그 때 이산화탄소 농도가 415ppm까지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온실효과로 지구 평균기온은 현재보다 섭씨 3~4도가 더 높았고, 해수면은 최고 40m까지 상승했습니다. 
과학자들은 화석을 분석해서 당시 어류 조류 포유동물 산호초의 생태계가 극도로 위축되거나 멸종위기에 이르렀던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 중에는 이산화탄소 증가를 멈추게 하지 못하면 '제3기의 기후변화'가 재발할 수 있다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산화탄소 농도와 킬링곡선은 21세기 내내 인구에 회자되는 위험지수로 주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려올 줄 모르고 올라가기만 하는 킬링곡선은 인류 문명의 몰락을 알리는 초침과 같은 존재는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킬링곡선이 진짜 살인곡선으로 변할 가능성은 큽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