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Two-Thousand Yard Stare
달력 한 장을 떼어내자 7월의 시선과 마주칩니다.
열대야를 앞당긴 6월, 길어진 낮만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제게 준 각성을 생각할 때, 그 일들 모두에게
두루 감사합니다, 감기까지도.
제게 세상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과 같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아이 같다는 말을 듣는 거겠지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대개 아이처럼 명랑합니다.
그러나 엊그제 위키백과(Wikipedia)에서 본 그림 한 장이
저의 명랑을 방해합니다. 미국의 화가이며 종군기자인
토머스 리 (Tom Lea, 1907-2001)가 그린 '해병들은 그걸
2천 야드 시선이라 부르네(Marines Call It That 2,000
Yard Stare)'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Thousand-yard_stare
이 그림은 '천 야드 시선'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1945년에
처음 라이프 (Life) 잡지에 실렸을 때는 제목 없이 펠렐리우
전투 속 이름 없는 해병의 1944년 초상으로 소개됐다고
합니다. 1000 야드는 914.4미터, 2000 야드는 1828.8
미터이니 '천 야드 시선'이란 볼 수 없는 거리 너머, 즉
삶과 죽음 너머를 보는 시선을 뜻하겠지요.
제 인생의 3, 4분의 1밖에 살지 않은 사람이 '천 야드 시선'을
갖게 된다는 건 끔찍한 일입니다. 그런 시선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모든 특질이 사라진 인간과, 그 사라짐의
과정을 목격한 사람, 보아도 보지 못하고 느껴도 느끼지
못하게 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이니까요.
그림 속 해병은 31개월 전에 미국을 떠나 처음 참가한
전투에서 부상당하고 열대병으로 고생하며 밤이면
자는 둥 마는 둥한 후 종일토록 구덩이 속 일본군을 찔러댄다고
했다고 합니다. 중대원의 3분의 2는 죽거나 부상당했고
아침이 오면 다시 공격하러 간다고.
이 그림은 80년 전 전쟁의 시선을 보여주지만, 그 시선은
오늘, 2025년 7월 1일에도 세계 곳곳에서 삶과 죽음 너머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주민인 게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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