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닐 때 저희 반에는 ㅅ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얼굴이 하얀 그 아인 늘 빳빳하게 풀 먹인
흰 칼라를 단 새것 같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왔습니다.
머리 또한 바로 어제 미용실을 다녀온 사람처럼 단정하니,
한 번도 다린 적 없는 교복을 입고 대충 빗은 머리로
학교에 가던 저와는 참 달랐습니다.
워낙 멋에 무심했던 탓인지, 책 재미에 흠뻑 빠져 있을
때라 그랬는지 ㅅ을 부러워하진 않았는데, 어느 날
문득 그 아일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지금이 네 인생의 정점이지만, 내 인생의 정점은 한참
후에 오겠구나.'
2학년 때 같은 반을 한 후 지금까지 ㅅ을 다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으니, 그 애 인생의 정점이 그때였는지 훗날
더 빛나는 시기가 왔는지 확인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과 재능이 발현되고
인정받는 시기가 다르다는 겁니다.
마음먹은 일을 오래 했는데 아직 자신이 원하는 수준이나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인정을 받지 못해 우울한 분들,
그러지 마십시오! 대기만성( 大器晩成)을 기억하며
'비육지탄'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대기만성( 大器晩成)은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릅니다.
아래는 전 청담고 교사 한상조 님이 동아일보에 쓴 '비육지탄'에
관한 칼럼입니다. 한 선생님께 감사하며 일부를 옮겨둡니다.
髀肉之歎(비육지탄)
(넓적다리 비, 고기 육, 어조사 지, 탄식할 탄)
재능을 발휘할 때를 얻지 못하여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을 한탄함.
● 유래: 진수(陳壽)가 지은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에서 유래한 성어입니다.
후한(後漢) 말기 중국은 혼란의 시대로 각 지역의 영웅들이 세력을 다퉜습니다.
한나라 황족인 유비(劉備)도 한(漢) 왕조의 후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천하를
바로잡으려고 했으나 세력은 상대적으로 미약했습니다. 조조(曹操)와의 싸움에서
패한 유비는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로 달아났습니다. 유표는 유비를 직접
교외에 나가 맞이하여 극진하게 대우하고 병력을 증원해줘 신야(新野)에 머물게
했습니다. 유비가 형주에 머문 지 몇 년이 지나 유표가 베푼 연회에 참석했는데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자신의 넓적다리에 살이 두둑하게 붙은 것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유비의 침통한 모습을 본 유표가 그 까닭을 묻자, 유비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예전에는 늘 말을 타고 전쟁터를 누볐기 때문에 넓적다리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습니다(吾常身不離鞍 髀肉皆消). 그러나 지금은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았더니 이렇게 살이 다시 붙었습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곧 늙음이
닥쳐올 텐데, 아직 아무런 공업(功業)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서러울
뿐입니다.” 자기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을 한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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