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784

황소, 얼룩소, 칡소, 젖소 (2023년 2월 27일)

경향신문을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 엄민용 기자의 '우리말 산책'처럼 고마운 글 때문에 아직 보고 있습니다. 우리말이 엉망이 되어간다고 안타까워하는 제가 우리말에 얼마나 무식한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엄 기자에게 감사하며 오늘 신문에 실린 그의 글을 옮겨둡니다. 우리말 산책 얼룩소는 ‘젖소’가 아니라 ‘칡소’다 ‘황소’ 하면 누런 털빛의 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황소는 털빛과 상관없이 “큰 수소”를 뜻하는 말이다. ‘황소’는 15세기만 해도 ‘한쇼’로 쓰였는데, 이때의 ‘한’은 “크다”는 의미다. 황소와 닮은꼴의 말이 ‘황새’다. 황새도 키가 큰 새이지, 누런 털빛의 새는 아니다. 황새의 옛 표기 역시 ‘한새’였다. 황소가 누런 털빛과 상관없음은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얼룩백이 황소’..

동행 2023.02.27

노년일기 153: 시가 있어 '봄' (2023년 2월 24일)

젊은 시절엔 화 내는 일이 잦았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했습니다. 일엔 게으르면서 사교엔 부지런한 사람들도 이상했습니다. 타인이 무심코 뱉은 말에 상처를 입을 때도 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그런 일들이 잠을 방해했습니다. 나이 덕을 보아서인지 화 내는 일이 줄었습니다. 내가 볼 때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다른 사람에겐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만큼 사교에 부지런한 사람도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 본인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일 뿐 나와는 상관없음도 알았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로 인해 우울한 기분이 들 땐 시를 읽습니다. 로버트 브라우닝 (Robert Browning: 1812-188..

동행 2023.02.24

노년일기 152: 했던 말씀 또 하시네! (2023년 2월 22일)

아흔 넘은 어머니를 만나 점심 먹고 차 마시다 보면 '했던 말씀 또 하시네!'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전에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놓곤 했는데 요즘엔 그러지 않습니다. 했던 말씀을 반복하셔도 좋으니 앞으로도 쭉 지금처럼 만날 수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엔 우연히 집어든 류시화 씨의 책 에 나오는 그랙 맥도널드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엄마, 그 얘긴 한 삼백 번 하셨는데' 했던 걸 반성했습니다. 75세 노인이 쓴 산상수훈 내 굼뜬 발걸음과 떨리는 손을 이해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내 귀가 얼마나 긴장해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중략) 오늘 내가 물컵을 엎질렀을 때 별일 아닌 걸로 여겨준 자에게 복이 있나니, (중략) 나더러 그 얘긴 오늘만도 두 ..

동행 2023.02.22

아기가 태어났대요! (2023년 2월 20일)

태어나는 게 좋은 일인가에 대한 답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기가 태어나야 인간 세상이 유지 또는 발전합니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아 출생률이 자꾸 낮아지는 사회는 유지, 발전하기 어려우니 저출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 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저출생을 걱정하지만 언론엔 아기들이 학대당하다 사망했다는 뉴스와, 잘못된 제도 탓에 아기 키우기가 힘들다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이 오래된 모순이 어서 해결되어 누군가의 아기가 태어날 때 모두 함께 기뻐하고 그 아기가 자랄 때 모두가 제 아이처럼 응원해 주면 좋겠습니다. 아래 글의 서두에 나오는 '금줄'은 '禁줄'이고 '禁'은 '금할 금'입니다. “우리 동네 아이가 태어났어요” 차준철 논설위원 예전에는..

동행 2023.02.20

파슬리 한 조각 (2023년 2월 17일)

어떤 책은 그 자체로서 영감이나 각성, 위로를 주지만 어떤 책은 다른 책이나 사람을 저와 이어주는 다리가 됩니다. 최근 카페에서 본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의 책이 바로 그런 다리였습니다.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300쪽에 나오는 존 러스킨 (John Ruskin: 1819-1900, 영국 사상가, 미술평론가)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재능이 없는 사람도 데생을 배울 가치가 있는 이유는, 데생이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가 강의 끝에 했다는 말을 아래에 옮겨둡니다. 한국어 번역서의 문장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데생을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을 가르치려 했음을 잊지 마십시오. 두 사람이 클레어 시장에 걸어 들어간다고 해봅시다..

동행 2023.02.17

어찌할까, 어찌할까 (2023년 2월 8일)

어떤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아름답고 어떤 사람은 침묵할 땐 그저 그런데 말을 하면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말을 해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을 해서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 중엔 말만 잘하는 사람이 있고 말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만 잘하는 사람은 말과 달리 행동하고 사는 사람이지만 말도 잘하는 사람은 행동거지와 삶이 진실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말도 잘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말만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송혁기의 책상물림 어찌할까, 어찌할까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공자는 말 잘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속은 강하고 굳세면서 겉은 질박하고 어눌한 ‘강의목눌(剛毅木訥)’이 이상적인 인격에 가깝다고 했다..

동행 2023.02.08

시, 그리고 '시시한 그림일기' (2023년 2월 3일)

이름 있는 병에 잡혀 3년 간 투병하느라 애쓴 제 아우 일러스트 포잇 (Illust-poet) 김수자 씨가 다시 현업에 복귀했습니다. (원래 남에게 제 아우를 얘기할 때는 '씨'라는 존칭을 붙이지 않는 게 옳지만 그도 이제 회갑이 지나 '씨'를 붙였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오랜만에 그의 블로그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 새 그림이 걸렸습니다. 투병하는 동안 '나의 아픔은 별것 아니라는 주문으로 엄살 부리지 않으려 애썼다.'는 그의 토로를 읽으니 머리가 다 빠지고 키가 줄어들 만큼 고통을 겪으면서도 의연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자랑스러운 아우, 존경스러운 사람, 김수자 씨의 건강과 활약을 축원하며 그의 새 작품을 아래에 옮겨둡니다. 이르사 데일리워드(Yrsa Daley-Ward)의 시 아래 글은..

동행 2023.02.03

소설가란... (2023년 1월 27일)

책을 읽는 사람은 계속 줄고 있지만 글을 쓰는 사람도 줄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 중에 소설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사람이 아무리 줄어도 글을 쓰는 사람은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 중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199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121쪽: "이처럼 소설가란 가슴이 두근거리는 자신의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이다. 그리고 일단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어떤 식으로든 뻔뻔스러워져서 끝까지 계속 이야기를 하고야 마는 인간인 것이다." -

동행 2023.01.27

피아니스트 임윤찬 (2023년 1월 24일)

오랫동안 인터넷의 폐해를 견뎌온 보상을 오늘 받았습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런던 위그모어홀 콘서트. 아래 링크에서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JeGcWZ-K5Q&ab_channel=WigmoreHall '그는 천재다, 그와 동시대에 살게 되어 영광이다...' 그를 칭송하는 무수한 댓글들을 읽는데 문득 떠오르는 한 생각: 2004년 3월 20일에 태어났다지만 그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라는.

동행 2023.01.24

톨스토이의 누나 (2023년 1월 12일)

며칠 전 카페에서 법정 스님의 을 읽다가 홀로 웃었습니다. 스님이 165쪽에 인용해 두신 의 구절들 때문인데, 이 책은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딸인 알렉산드라 톨스토이가 썼다고 합니다. 아래에 저를 웃긴 문장들을 옮기다 보니 고기 반찬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우리 고모는 먹는 것을 좋아하는 식도락가였는데 어느 날 야채 일색의 식탁을 대하고서는 크게 화를 냈다. 자기는 이런 허섭쓰레기 같은 것은 못 먹겠으니 고기와 닭을 달라고 했다. 다음 번에 식사를 하러 온 고모는 자기 의자에 매여 있는 살아 있는 닭과 접시에 놓인 부엌칼을 보고 '이게 뭐야' 라고 놀라서 물었다. '누님이 닭을 달라고 했잖아' 하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우린 아무도 그걸 죽일 생각이 없거든. 그래서 누님..

동행 2023.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