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김수자 전시회 '동심원' 2 (2023년 9월 12일)

divicom 2023. 9. 12. 06:28

어제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갤러리 담에서

일러스트레이터 김수자 씨의 전시회 '동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래에 전시회 소개글을

옮겨둡니다. 지면 관계상 오늘은 우리말로 쓴 글만

올리고 내일은 영어로 쓴 글을 올리겠습니다.

글을 쓴 사람이 누구냐고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색연필로 지우는 디지털시대의 얼룩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영향력이 날로 확대되며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천박하다. 사람들은

디지털 광풍을 타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오염시킨다.

가장 큰 해악을  저지르는 건 어줍잖은 지식을 떠벌려

소음을 가중시키는 사람들과 예술가연함으로써 예술의

격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이다40년 경력의 일러스트레이터

김수자는 특유의 묵묵함으로 소음쟁이들과 사이비

예술가들이 남기는 시대의 얼룩을 지운다.

그리고 그의 지우개는 색연필이다.

 

색연필은 기원전 4~5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쓰이기

시작한 그림 도구로서, 오늘날엔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는

어린이들 손에 들린 입장권이다. 또한 색연필은 그림 그리는

사람 김수자의 성격과 가장 비슷한 성격을 가진 매체다.

김수자와 색연필은 소박하고  투명하되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같다. 김수자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단순한 그림 도구인

색연필로 인류 역사상 가장 발달한 시대라는 디지털시대의 얼룩을 지운다.

 

편의와 편리가 시대정신이 되었지만 김수자의 작품들은

어느 것 하나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무수한 반복적 동작을

통해 완성된 그의 작품 25점은 따로 또 같이, 보는 이들을

보이는 세상 너머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의 동심원들 앞에서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는

사람들은 오래 잊고 있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1995 ‘TV-사람전을 통해 문명과 사람의 관계를 질문했던

김수자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시에서 답을 얻었다는 듯

시를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에 집중했고, 2002‘Illust Essay-Blue’,

2005인사동 가는 길’, 2008시를 그리다’, 2011나의

아름다운 정원’, 2015서울을 걷다’ 전시회와 수많은 그림책과

삽화를 통해 아직 남아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려 애썼다.  

 

이번 전시는 김수자가 60여 년 생애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웠던

신체적 질병과 싸운 후에 열리는 전시회인만큼 앞선 전시회들과는

다른 중요한 성취를 보여준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다.

아프면 대개 평소에 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니, 심하게 아프고도

성숙을 이루지 못한다면 아픔은  그냥 낭비가 된다. 그런 면에서

김수자는 아픔을 성숙의 거름으로 승화시킨  예술가이고,

그의 작품들이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힐링을

선사하는 이유다. 그의 다음 전시회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