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영화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영화 중에
1953년에 발표된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이 표현은 영국이 자랑하는 러디어드 키플링 (Rudyard
Kipling: 1865-1936)의 시 'Gentlemen-Rankers (특권층
출신 병정들)에서 처음 쓰였고, 제가 좋아하는 제임스 존스
(James Jones: 1921-1977)의 소설 제목이 되었다가
그 소설로 만든 영화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하면 얼핏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이 표현은 지상에서 살지 못해 죽음으로 가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 전쟁터에서 죽는
사람들, 매일 10.5명씩 자살하는 한국 노인들... 모두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는 것이지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 자살로 생을 마감한
65세 이상 한국 노인은 18,044명을 넘고, 65세 이상 자살률은
15~64세 자살률보다 45 퍼센트 늘었다는 게 3일자 경향신문
기사 내용입니다. 서울시 전망에 따르면 2040년엔 서울
인구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 될 거라고 하니 자살 노인의
수 또한 훨씬 늘어날 겁니다. 2040년... 겨우 15년 후입니다.
경향신문 이혜인 기자가 기사에 인용한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오대종 박사는 “노인 자살에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과 질환뿐만 아니라 만성 신체질환, 통증,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대인 관계에서의 갈등 등 다양한 위험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여한다”고 합니다.
노화를 경험 중인 제 생각에는 육체의 노쇠가 초래하는 우울증이
매우 심한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노화는 주로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들--머리가 희어지고 주름과 검버섯이 생기는--이지만,
노인들이 느끼는 노화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육신과 통증일 겁니다.
노쇠와 통증은 삶의 의지를 약화시키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의지를 다잡고 살기 위해 애쓰겠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산다면 고통스럽게 살 이유를
찾기 힘들 겁니다. 지금 한국엔 약 230만 명의 홀몸 노인이 있습니다.
전장과 후방이 다른 점은 후방에선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쟁터의 젊은이들은 선택을 거부 당한 채 '영원으로' 가지만
후방에선 노인조차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날이 좁아지는 지상의
길과 점차 넗어지는 영원으로 가는 길 중 하나를... 오늘 지상을
선택했다 해서 내일 영원을 선택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요.
지상의 모든 동료 노인들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죽는 날까지
선택할 수 있게 하소서! 영육이 함께 조화롭게 시들어 유병장수를
피하게 하시고, 동백꽃 지듯 툭! 지게 하소서!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경향신문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032046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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