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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 (2024년 1월 19일)

며칠 전 어머니 계신 병원에서 오빠 내외를 만났습니다. 오빠가 넘어져 오른손 뼈에 금이 갔다고 했습니다. 젊은 시절 네다섯 번이나 깁스를 했던 제겐 못 미치지만 오빠의 깁스가 처음은 아닙니다.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 덕에 다시 만난 2012년 12월 16일 자 ‘빙판’이라는 제목의 글에도 오빠가 오른팔에 깁스를 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때 그 글.. 거울 보듯 보고 나서 조금 줄여 옮겨 둡니다. 그 글의 전문을 읽고 싶으신 분은 링크를 클릭하십시오. https://futureishere.tistory.com/953 ----------------------------------------- '빙판' 하면 누구나 추운 겨울을 생각하지만 삶의 골목 골목엔 빙판처럼 우리를 시험하는 곳들이 늘 있습니다. 때로는 ..

동행 2024.01.19

노년일기 207: 강물이 흘러가는 곳 (2024년 1월 17일)

가끔은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곤 했는데, 근래엔 한참 그러지 못했습니다. 강물을 바라보는 건 생生을 바라보는 것인데... 그러다 헌책방에서 산 작은 책을 읽었습니다. 팀 보울러(Tim Bowler)의 . 표지에 강이 있어 이 책을 집어든 건지 모릅니다. River Boy는 뭐라고 번역해야 할까요? '강물 소년'이 될 수도 있고 '강의 소년'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 소설의 '강'은 인생을 은유한다고 합니다. 소설의 첫 장이 시작하기 직전 페이지에 구약성경의 전도서에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Ecclesiastes 1:7 All the rivers run into the sea; yet the sea is not full; unto the place from whence the rivers c..

동행 2024.01.17

솔 벨로의 문장들 5: 좋은 남편 (2024년 1월 13일)

제가 9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아버지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밤중에 자신을 해치러 온 사람을 감복시켜 들고 온 칼을 두고 나가게 하신 '영웅'이니까요. 그런 아버지지만 상대하면 늘 지는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몰리면 아버지는 "밖에 나가면 다들 내게 고개를 숙이는데. 저 조그만 여자만 나를 만만히 본단 말이야" 하시며 겸연쩍게 웃으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좀 다정하게 굴 걸, 아버지를 좀 인정해 드릴 걸 하고 후회하신 적이 많았고, 이제는 병실에서 아버지와 만날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도 그렇지만, 부부란 일반적인 힘의 법칙이나 관계의 법칙을 적용할 ..

오늘의 문장 2024.01.13

노년일기 206: 재활용 어려움 (2024년 1월 11일)

선물받은 수분크림을 다 썼습니다. 빈 통을 재활용품 수거함에 넣으려다 보니 통 표면에 통은 PET, 뚜껑은 Other라고 표기되어 있고 Other 아래에 '재활용 어려움'이라고 써 있습니다. 며칠 전 선물받은 다른 수분크림을 꺼내 봅니다. 통은 플라스틱, 뚜껑은 PP '재활용 우수'라고 써 있습니다. 혹시 사서 쓰게 된다면 이 제품을 써야겠습니다. 병원에 드나들며 고령의 환자들을 많이 보아서 일까요? 전 같으면 공분을 일으켰을 '재활용 어려움'이 어머니 병실의 노인들을 상기시켜 슬픔을 일으킵니다. 우리 어머니를 비롯해 그 방의 모든 분들은 각자 타고난 능력은 물론 타고나지 못한 능력까지 동원하며 죽어라 살아내신 후에 지금에 이르렀을 겁니다. 언젠간 내 몸도 재활용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

동행 2024.01.11

이영애 씨에게 (2024년 1월 9일)

저는 배우 이영애 씨를 좋아합니다. 그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이름에 걸맞게 처신합니다. 이 나라에 이영애 씨 같은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어머니가 누워 계신 방엔 세 분의 고령 환자들이 계십니다. 혼자서는 거동이 불가능한 분들입니다. 오후 세 시가 되도록 어머니 곁에 붙어 있다 잠시 병실 근처 휴게 공간에서 때늦은 점심을 먹는데, '아퍼? 어디가 아퍼!' 잘못한 아이를 야단치는 듯한 큰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 병실로 달려가니 4, 50대로 보이는 간호사가 젊은 동료를 옆에 두고 아흔넷 어머니에게 반말로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청력이 나빠 못 들으실까봐 큰소리쳤겠지 하고 이해한다 해도 반말은 용서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엔 기가 막혀 명찰을 볼 생각도 못했는데 나중에 다시 ..

동행 2024.01.09

노년일기 205: 지금, 준비 중입니다 (2024년 1월 7일)

나이 든 사람들은 종종 얘기합니다. '자다가, 고통 없이 죽고 싶어' 라고. 누군가 자다가 죽었다는 얘기를 가끔 듣지만 그가 고통도 없이 죽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통이 있었다 해도 몇 시간의 고통이었을 테니 부러움을 살 만합니다. 그 고통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생(生)과 사(死)를 잇는 다리 위에 계시는 듯한 어머니를 보며 살아가는 일과 죽어가는 일을 생각합니다. 사고사나 자살이 아닌 한 죽음도 삶처럼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입니다. 삶의 과정과 죽음의 과정이 결정되는 건 언제일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삶의 과정은 대개 10대 초반에 결정되고, 죽음의 과정은 65세 전후에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15세쯤 어렴풋하게나마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구나 깨닫고 그것을 좇아 살다가 65..

나의 이야기 2024.01.07

솔 벨로의 문장들 4: 분노의 힘 (2024년 1월 5일)

시간이 투스텝으로 달아나는 아이 같습니다. 사위어가시는 어머니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 차 문득 고개 들면 그새 2, 3일이 지나 있습니다. 요절한 가난한 선비의 딸로서 어려서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교육이라곤 일제 때 야학에 다닌 게 전부였지만, 어머니는 제가 아는 누구보다 정의로웠고, 정의로운 분노를 망설임 없이 표출해 손해를 입은 적도 많았습니다. 바뀌어 가는 세상에서도 어머니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흔이 넘도록 신문을 보시며, 부정을 저질러 이익을 취하는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을 가차없이 비판하시는가 하면, 윗사람이 성희롱이나 성 착취를 할 때 훗날의 피해나 불이익을 생각해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맞서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근 94년 생애 동안 어머니의 정신을 지켜준 건 바로 그..

오늘의 문장 2024.01.05

1월 3일의 다짐 (2024년 1월 3일)

활동적이시던 어머니가 몸을 일으키시지도 못하고 침묵으로 자식들을 가르치십니다. 어머니는 어느새 당신 몸 크기의 거울입니다. 자식들은 그 거울에 늙어 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봅니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늘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낯익은 다짐이지만 아직 실천하지 못했으니 다시 상기하며 강고히 해야 합니다. 졸저 의 1월 3일자 글에도 그 다짐이 실려 있습니다. 아이고... 새 달력을 걸며 새해가 되었지만 세상은 지난해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침을 여는 해도 밤을 밝히는 달도 그대로이고 1월의 바람도 12월의 바람처럼 비릿하고 차갑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연도와 달력은 뭐 하러 바꾼다지?’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연도와 달력이 바뀌어 다행입니다. 연도가 바뀌지 않으면 12월 다음에 13월이 오고 13..

나의 이야기 2024.01.03

노년일기 204: 인생을 다시 산다면 (2023년 12월 31일)

2023년의 마지막 날. 다 잤다는 기분이 들어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 어젯밤 11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으니 좀 더 자야할 거야 생각하며 누워 있었지만 떠난 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상승은 드물고 낙하는 풍성했던 일년. 중력이 있는 지구에선 떨어지는 게 당연하겠지만 한 번쯤은 중력을 이기고 싶었는데 ... 그래도 사랑 많은 한 해였습니다. 아는 사람들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늘 기도하며, 지혜와 용기가 그들과 함께하기를 빌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친구들은 선물과 다정한 말로 격려해 주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친절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다시 새 달력을 걸며 자문합니다. 지나간 일년을 다시 산다면, 아니 지나간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르게 살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책상에 앉아 책을 읽던 시..

나의 이야기 2023.12.31

노년일기 203: 생애가 끝나갈 때 (2023년 12월 29일)

아침 기도 시간에도 낮에 산책을 하다가도 눈시울이 젖습니다. 생애의 끝 언저리에서 한 해의 끝을 맞는 분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물 찬 제비 같던 어머니가 갑자기 거동을 못하게 되시고, 얼마 전만 해도 새로 나가는 데이케어센터가 재미있다고 밝게 웃으시던 이모가 요양병원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선균 씨처럼 떠나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태어나서 1세기 안팎의 시간을 산 뒤에 삶이 죽음으로 치환되는 시간을 거쳐 마침내 죽음과 만납니다.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육체에서 시작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미 죽음의 과정이 시작된 후에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 과정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건 삶이 한창일 때만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이겠지요. 삶이 한창일 때부터 감사..

동행 202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