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글을 묻는 사람에게 1 (2025년 8월 19일)

divicom 2025. 8. 19. 17:46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업 삼아 살다 보니

가끔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쓰나요?'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 질문은 '어떻게 해야 잘 사나요?'와 비슷한

질문입니다. 질문 받은 사람이 잘 살아서 그런

질문을 받기보다는, 질문하는 사람이 보기에 

잘 사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 질문을 받으니까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쓰나요?'라는 

질문을 받는 것과 제 글쓰기 능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여기 기술하는 것도 누구를

가르치기 위한 지침이 아니고 저 자신을 탁마하는 데

쓰는 경책입니다.

 

첫째는 자기 글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글을 다루어 먹고 사는 사람답게 저는 꽤 다양한

글을 읽고 손보곤 합니다. 논문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박사 교수부터 글 쓰는 일과 멀어

보이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제가 접하는

필자들은 각양각색입니다.

 

직업과 배경은 달라도 그들이 글쓰기와 관련해서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있는데, 그건 바로

자신의 글과 너무도 '쉽게', 그리고 '단단하게' 사랑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쉽게'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오류투성이인

자신의 글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신조어 중에 '금사빠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라는 말이 있는데, 오류투성이인 글을 단지

자신이 썼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들도 일종의

'금사빠'일 겁니다. '단단하게'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논리나 흐름, 맞춤법이나 표현이 잘못된 글의 수정을  

완강히 거부함을 뜻합니다. 

 

제가 신문 기자가 되어 처음 받은 훈련은 제 기사가

선배들의 손에 교정되거나 삭제되는 걸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글 잘 쓴다는 말을 가끔

들었고 글을 써서 상도 받은 적이 있었으니 아무리

선배라 해도 남이 내 글을 손대는 게 기분 나빴습니다.

그러나 편견 없이 읽어 보니 선배가 손댄 글이 손대기

전의 제 글보다 명료하고 흐름도 좋았습니다.

 

물론 모든 선배의 손길이 개선으로 귀결되진 않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의 글을 손보는 사람들 중엔 자신이

일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손댈 필요 없는 글을 손대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얘기할 필요조차 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건 좋은 일이고 살맛 나는 일이지만, 

나쁜 사람과 사랑에 빠지거나 나쁜 글과 사랑에 빠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시간, 나아가서는 인생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특히 흠투성이인  자신의 글과 사랑에 빠져

고치기를 거부한다면 그의 글은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잘못 쓴 자신의 글과 사랑에

빠지는 걸 피할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