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얘기한 대로 오늘은 어떻게 해야
오류 많은 자기 글과 사랑에 빠지는 일을
피할 수 있는지 얘기하겠습니다.
얼핏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간단합니다. 그저 자기가 쓴 글을 남의 글
읽듯 읽어 보면 되니까요.
글을 쓴 다음 읽어 보는 것은 외출복을 입고
나가기 전에 거울을 보는 것보다 당연한
일이지만, 자기가 쓴 글을 읽어 보지 않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본다면 적어도 맞춤법이 틀린 글을
세상에 내놓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침 신문을 보다가도 오류를 발견하곤
하는데, 기사를 쓴 기자나 그 기사를 검수한
사람이 제대로 보았다면 잘못된 철자나 표현이
그대로 신문에 인쇄돼 나오진 않을 겁니다.
자기가 쓴 글을 남의 글 읽듯, 무조건 자기
아이 편을 드는 무지한 엄마처럼 자기 글을
역성들지 않고 읽는 사람은 더욱 드문 것
같습니다.
글이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읽어 볼
때는 되도록 소리 내어 읽는 게 좋습니다. 글은
글자(단어)의 모음이지만 글자를 모은 것만으로는
글이 되지 않습니다. 글자를 맞는 자리에 써서
하나의 줄기, 즉 흐름을 이루어야 글입니다.
글의 흐름을 보려면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 내어
읽어야 하지만 자꾸 읽다 보면 눈으로만 읽어도
소리 내어 읽는 것처럼 흐름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소리 내어 읽을 때 막히거나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가차 없이 고쳐야 합니다.
가능하면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읽어야 합니다.
읽기 전부터 자신이 쓴 글과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읽으면 남의 눈에 크게 보이는 오류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만일 자신이 쓴 글과 사랑에 빠져 어떤 수정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사람은 완벽한 글을 쓰기 위해 진력하거나
되도록 글을 쓰지 않는 게 좋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아는 자신의 문제를 자신만 모르는 바보가
되기 쉬우니까요.
요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큰소리로 무식을 드러내는 이에게 '괜찮아, 그게
네 성격이야,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다양함과 관대함을 추구하면서 '다름'을
강조하더니 언젠가부터 '틀린 것'을 다른 것으로
포장하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병아리 기자가 쓴 기사를
손보아 주었다가 '이렇게 쓰면 안되나요? 이렇게
써도 무슨 말인지 알잖아요?' 하는 말을 들었다는
신문기자도 있고, 보고서의 오류를 수정했다가
등뒤에서 '그렇게 쓸 수도 있지, 웬 잘난 척!' 하고
빈정대는 소리를 들은 회사원도 있습니다.
잘못과 실수를 고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래 살아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초고령 사회인 한국에 존경할 만한 노인이 많지
않은 이유이고,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오류투성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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