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 11

존 스타인벡의 문장들3: 돈 (2023년 10월 31일)

매달 끄트머리에 이르면 긴장하게 됩니다. 관리비와 공과금을 내야 하니까요. 내야 할 돈을 다 냈구나 휴~ 하는 순간 아차! 합니다. 우렁이가 김을 맨 스테비아 쌀을 보내주신 무안 최 선생님께 자장면 값이라도 보내고 싶은데, 돈이 없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나날을 돌아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행복하지만 꼭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돈'입니다. 그래도 '돈'만 많고 행복이 부족한 것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 혼자 웃는데 '그래서 넌 그렇게 사는 거야!' 어머니의 탄식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우울해지려는 찰나, 오랜 친구 존 스타인벡의 낮은 목소리가 위로합니다. 역시 저는 운이 좋습니다. *최 선생님의 우렁이, 스테비아 쌀을 구입하고 싶으신 분은 연락 주십시오. 20킬로그램에 택배비 포함, 7만원입니다...

오늘의 문장 2023.10.31

정성의 온도 (2023년 10월 29일)

며칠 전 후배 덕에 처음 가보는 식당에 갔습니다. 편의점 2층에 있는 일식집은 평범해 보였는데 들어가보니 빈 자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후배가 예약을 해둔 덕에 간신히 자리에 앉았습니다. 점심코스가 1인당 5만 원이나 한다는데 이렇게 붐비다니... 이 나라에 부자가 많긴 많구나 생각했습니다. 음식이 나왔습니다. 음식의 온도가 완벽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뜨거워야 할 음식이 뜨겁게 나오고 차가워야 할 음식이 차갑게 나오는 건 당연하지만 요즘은 당연한 것을 해내지 못하는 곳이 많습니다. 식당을 나설 때 주인인 듯한 여자분이 "맛있게 드셨어요?" 물었습니다. "네, 온도가 완벽해서 참 좋았어요. 셰프님께 감사한다고 전해주세요" 하고 답했습니다. 그분은 매우 기뻐하더니 저를 계단 아래 길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

동행 2023.10.29

존 스타인벡의 문장들2: 전쟁 (2023년 10월 26일)

국화와 코스모스가 계절을 장식하는데 뉴스엔 연일 전쟁 소식입니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잃고 누군가는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고 훈장을 받겠지요. 이스라엘과 하마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말 이 전쟁들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다시 존 스타인벡의 문장들이 떠오릅니다. 에 나오는 문장들입니다. P. 50 They say a good soldier fights a battle, never a war. That's for civilians. 진짜 군인은 전투를 할 뿐, 전쟁을 하는 법이 없다지. 전쟁은 민간인들이 하는 거니까. P. 109 "Do you remember my decorations?" "Your medals from the war?" "They were ..

오늘의 문장 2023.10.26

존 스타인벡의 문장들1: 바보 (2023년 10월 23일)

대학 시절의 괴로움이 아르바이트였다면 즐거움은 도서관이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은 이 나라가 우후죽순처럼 성장하던 때라 대학을 졸업만 하면 취직이 되었습니다. 호황 덕에 텅 빈 도서관은 아주 소수의 차지였고 그들 중에 저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평생의 친구를 여럿 만났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큰 위로를 주는 사람은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 (John Steinbeck: 1902-1968) 입니다. 물론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는 66년을 살며 이렇게 큰 위로를 남겼는데 그의 나이를 넘겨 사는 저는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여러 가지 처음 겪는 일이 많았던 지난 10개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스타인벡 덕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스타인벡에게 위로받듯 제 문장들에 위로받으며 힘든 시기를 지나는 사람이 한..

오늘의 문장 2023.10.23

노년일기 195: 사랑의 충고 (2023년 10월 21일)

저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저를 '위해서' 한 말이 여러 날 잠을 방해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가끔 충고를 가장한 비판을 하시지만, 근래에 제 잠을 방해할 정도의 충고를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남에게 충고하기를 좋아하지만 나이 든 사람에겐 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그만큼 살았으면 본인도 본인의 장단점을 알 테고 충고를 해도 고치지 않거나 고치지 못할 거라고 짐작하는 것이지요. 불면을 초래한 충고 덕에 지난 삶을 돌이켜볼 수 있었으니, 나쁘기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니 제 삶은 변명 가능한 삶이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 태어나 자라 나이 든다면 또 다시 그때와 다르지 않은 선택들을 하며 지금과 다르지 않은 흰머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충고의 후유증은 오래갔습니다. '긴 시간동안 제법..

나의 이야기 2023.10.21

가을비 (2023년 10월 19일)

오랜만에 찾은 단골 카페 마당에서 수국들이 시들고 있었습니다. 대추를 떠나보낸 대추나무도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맞은편 장애인 주간 보호시설의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압니다. 앞마당을 붉게 물들이던 수국들과 데일 듯 뜨거운 여름 햇살에 오히려 빛으로 맞서던 대추나무 잎들, 주차장을 넘어 인도까지 넘나들던 장애인 시설의 자동차들을... 보이는 것은 늘 변하지만 진실은 그 변화 너머에 있는 것... 자박자박 문밖을 거니는 가을비, 시들던 수국과 기운 없는 대추나무를 반짝반짝 씻어 주겠지요. 주차장 바닥도 쌓인 먼지를 벗고 말개질 겁니다. 자박자박 비의 발소리를 들으며 시간처럼 진한 커피 마시고 싶습니다.

나의 이야기 2023.10.19

어느 날의 노트: 입안에 말이 적고 (2023년 10월 15일)

방안 정리를 시작했는데 이 일이 언제 끝날지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이쪽에 있는 책을 저쪽으로 옮기고 어쩌고 하며 책꽂이 한 칸을 간신히 비우고 나면 머리가 아파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 버릴 책을 버리자고 시작한 일인데 버릴 책은 찾지 못하고 메모 쪽지 두어 장 버리는 게 고작입니다.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메모지중에 한 장이 손에 들어옵니다. 법정 스님의 책 의 78쪽과 79쪽에서 옮겨 적은 글입니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는 옛사람의 가르침을 나는 잊지 않으려 한다. 하루 일과를 대충 마치고 나면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다. 이 산중에는 믿음직한 몇몇 친구들이 있어 든든하다.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청랭한 개울 물소리를 ..

동행 2023.10.15

노년일기 194: 시장 사람들 (2023년 10월 12일)

아이들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니 사는 곳이 중요하고, 저처럼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인의 경우엔 생활을 영위하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 사는 지역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습니다. 시장이 가까우니까요. 엊그제 시장에 가니 가끔 들르던 청과물 가게의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어디 아픈가... 40대 부부를 걱정했는데, 오늘은 열려 있었습니다. 세 개에 천 원이라 쓰인 골판지가 꽂혀 있는 상자의 파프리카를 고르며 옆에 있는 남자 주인에게 "엊그제 문 닫았지요? 왔다가 허탕 쳤어요" 하며 웃으니 "집에 일이 좀 있었어요" 심상하게 답하고는 골판지를 집어들었습니다. '3개 1,000원'이라 쓰인 것을 쓱쓱 지우며 "지금부터 파프리카 다섯 개 천 원!' 소리치더니 골판지에도 '5개..

동행 2023.10.12

노년일기 193: 아들의 흰머리 (2023년 10월 9일)

저는 젊어서도 머리가 아주 검지 않았는데 아들의 머리는 푸른 빛이 돌 정도로 검었습니다.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칼을 보면서 아름다운 자연에서 받는 감동 같은 감동을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들의 머리칼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검던 머리가 갈색으로 변하고 윤기가 없이 꺼칠해 보이기 일쑤입니다. 밤 새우기를 밥 먹듯 하는데다 밤낮으로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아들의 머리칼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기에 저렇게 셀까 안쓰러워한 적도 있고, 젊어서부터 멜라닌 색소가 부족했던 나 때문인가 미안한 적도 있었지만, 그가 이뤄가는 것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세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아들의 머리를 보면 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제 머리가 희어지는 걸 견디..

동행 2023.10.09

노년일기 192: 인류의 '베프' (2023년 10월 6일)

얼마 전 처음 만나는 후배와 얘기하다가 제 주변에 머물다 저세상으로 간 사람이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싫어하던 사람도 있고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 우연히 들춘 옛 노트에서 모차르트가 죽음에 대해 쓴 편지를 읽었습니다. 226쪽 모차르트가 삶의 끝 무렵에 아버지에게 쓴 글입니다. 제 곁을 떠난 사람들중에도 죽음에 대해 모차르트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겠지요... "죽음이란 우리 삶의 진실로 궁극적인 목적이기에 지난 몇 년간 나는 이 가장 진실되고 가장 좋은 인류의 친구인 죽음과 친하게 되어서, 그것은 더 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않고 마음이 놓이게 하고 위로를 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죽음이란... 우리의 진정한 축복의 열쇠입니다."

오늘의 문장 2023.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