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저를 '위해서' 한
말이 여러 날 잠을 방해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가끔 충고를 가장한 비판을
하시지만, 근래에 제 잠을 방해할 정도의 충고를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남에게 충고하기를 좋아하지만
나이 든 사람에겐 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그만큼
살았으면 본인도 본인의 장단점을 알 테고
충고를 해도 고치지 않거나 고치지 못할 거라고
짐작하는 것이지요.
불면을 초래한 충고 덕에 지난 삶을 돌이켜볼
수 있었으니, 나쁘기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니 제 삶은 변명 가능한 삶이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 태어나 자라 나이 든다면
또 다시 그때와 다르지 않은 선택들을 하며
지금과 다르지 않은 흰머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충고의 후유증은 오래갔습니다.
'긴 시간동안 제법 가까이서 나를 보고 겪은
사람인데 나를 그렇게 모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그가 나를 사랑해서
충고한 게 맞나? 내가 내 삶의 방식은 틀렸고
그의 방식이 옳다고 말하지 않으니 나를 비판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그러면 나는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나? 내가 보고 아는 그라는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알고 지낸 지 수십 년이지만 저 또한 그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함께한 긴 시간이 오히려 '사랑'이라는
불투명한 렌즈가 되어 그가 저를 제대로 보고
제가 그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함께한 수십년어치만큼
서로를 아는 게 아니라 그 시간만큼 서로를 모르는
것이겠지요.
다시 한 번 안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단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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