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195: 사랑의 충고 (2023년 10월 21일)

divicom 2023. 10. 21. 12:27

저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저를 '위해서' 한

말이 여러 날 잠을 방해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가끔 충고를 가장한 비판을

하시지만, 근래에 제 잠을 방해할 정도의 충고를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남에게 충고하기를 좋아하지만

나이 든 사람에겐 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그만큼

살았으면 본인도 본인의 장단점을 알 테고

충고를 해도 고치지 않거나 고치지 못할 거라고

짐작하는 것이지요.

 

불면을 초래한 충고 덕에 지난 삶을 돌이켜볼

수 있었으니, 나쁘기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니 제 삶은 변명 가능한 삶이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 태어나 자라 나이 든다면

또 다시 그때와 다르지 않은 선택들을 하며

지금과 다르지 않은 흰머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충고의 후유증은 오래갔습니다.

'긴 시간동안 제법 가까이서 나를 보고 겪은

사람인데 나를 그렇게 모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그가 나를 사랑해서

충고한 게 맞나? 내가 내 삶의 방식은 틀렸고

그의 방식이 옳다고 말하지 않으니 나를 비판한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그러면 나는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나? 내가 보고 아는 그라는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알고 지낸 지 수십 년이지만 저 또한 그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함께한 긴 시간이 오히려 '사랑'이라는

불투명한 렌즈가 되어 그가 저를 제대로 보고

제가 그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함께한 수십년어치만큼

서로를 아는 게 아니라 그 시간만큼 서로를 모르는

것이겠지요.

 

다시 한 번 안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단잠을

자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