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어느 날의 노트: 입안에 말이 적고 (2023년 10월 15일)

divicom 2023. 10. 15. 11:59

방안 정리를 시작했는데 이 일이 언제 끝날지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이쪽에 있는 책을

저쪽으로 옮기고 어쩌고 하며 책꽂이 한 칸을

간신히 비우고 나면 머리가 아파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 버릴 책을 버리자고 시작한 일인데

버릴 책은 찾지 못하고 메모 쪽지 두어 장

버리는 게 고작입니다.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메모지중에 한 장이

손에 들어옵니다. 법정 스님의 책 <홀로 사는

즐거움>의 78쪽과 79쪽에서 옮겨 적은 글입니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는 옛사람의 가르침을 나는

잊지 않으려 한다. 

하루 일과를 대충 마치고 나면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다. 이 산중에는 믿음직한 몇몇 친구들이

있어 든든하다.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청랭한 개울 물소리를

들을 때처럼 내 속이 트이면서 생각의 실마리가

풀린다. 소로우의 <월든>과 허균의 <한정록

(閑情錄)>과 아메리카 인디언들, 그리고 사막의

교부들과 조주선사가 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주고 있다.

 

법정 스님처럼 높은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

책과 책 속의 사람들을 친구라 부르시니 저 같은

필부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한번 방에 들인 친구를

쉬이 내치지 못하는 것 또한 당연할 겁니다.

 

버릴 책을 찾지 못해 아팠던 머리가 법정 스님 덕에

맑아집니다. 스님이 한때나마 우리와 함께하셨고

스님의 책들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니  얼마나

감사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