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 10

'다음'과 '개악'(2022년 9월 29일)

제가 편협해서 그런 걸까요? 우리 사회에서 변화는 대개 '개악 (改惡)'입니다. 2009년 9월부터 글을 연재해온 포털사이트 '다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음' 블로그의 변화는 늘 개악이었습니다. 내일 오전부터 다음 블로그가 티스토리로 통합되어 사라진다니, 이 글이 제가 다음 블로그에 쓰는 마지막 글이 되겠지요. 이번 변화만큼은 개악이 아니길, 그래서 13년 전 다음과 인연을 맺은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되길 빕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하는 분들은 하던 대로 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김흥숙 블로그를 방문하면 저절로 티스토리의 김흥숙에게 연결된다는 것이지요. 부디 '다음'이 말하는 대로 실행되기를, 저를 찾는 분들에게 불편이 없기를 바랍니다. 안개 자욱한 9월 29일 아침입니다. 세상도 앞날도 안개 속이지만..

동행 2022.09.29 (2)

빈집 (2022년 9월 26일)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을 '빈집'이라 합니다. 미분양 아파트처럼 처음부터 빈집도 있지만 대개는 누군가 살다 떠난 집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옛집'이 어느 날 '빈집'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빈집을 보면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 집을 옛집이라 부를 사람들, 그 마당을 어슬렁거렸을 강아지와 고양이, 그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웠을 나무들, 그 뜰 가득 향기를 채웠을 꽃들... 포털사이트 '다음'이 10월 1일부터 블로그를 없애고 티스토리로 통합한다는 통보를 들어서일까요? 13년 동안 글을 써온 이 블로그를 드나드는데 빈집을 드나드는 느낌입니다. 아래 그림은 일러스트포잇 김수자 씨가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 '詩詩한 그림일기'에 신동옥 시인의 시 '빈집'과 함께 올린 그림입니다. 아래엔 그림..

나의 이야기 2022.09.26 (1)

글 집, 이사를 앞두고 (2022년 9월 21일)

작년 6월, 제가 오래 쓰던 휴대전화 번호가 제 의사와 상관없이 바뀌었습니다. 번호를 011에서 010으로 강제적으로 바꾸고 2G 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때까지, SK 텔레콤은 한참 제게 '회유와 협박' 문자를 보냈습니다. '번호를 어서 바꿔라, 바꾸면 이러저러한 것을 해 주겠다... 바꾸지 않으면 몇 월 몇 일부터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요즘 저는 그때처럼 일방적인, 비슷한 내용의 이메일을 받고 있습니다. '다음'에 연재하던 제 블로그, 바로 이 블로그를 '티스토리'에 '통합'하지 않으면 블로그가 사라진다는 것이지요. 이 블로그는 2009년 9월 18일에 개설했습니다. 당시 포털사이트 중에서 네이버가 가장 힘이 세어 대기업으로 치면 '삼성' 같은 존재이고, '다음'은 네이버보다 힘이 약하..

나의 이야기 2022.09.21 (1)

번역자의 부탁: 최소한의 성실성 (2022년 9월 18일)

직장생활을 하던 때나 프리랜서로 번역을 하는 지금이나. 제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최소한'입니다. 신문사와 통신사에서 일할 때 동료들에게서 기대한 것도 최소한의 성실성이었습니다. 기자로서 기사를 잘 쓰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최소한 육하원칙에 입각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가는 밝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빠뜨리거나 틀리게 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신문 1판이 나온 후 그런 기사를 발견하면 교정부에 비치된 교정지에 표시를 했습니다. 다른 부 기자들이 교정을 많이 보면 교정부원들의 일이 늘어나니 교정부원들은 싫어했지만, 하는 수 없었습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 못 본 척하는 것은 근무태만이고 독자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니까요. 번역을 하는 지금, 대개 다른..

동행 2022.09.18 (1)

<월든>이 하는 말 (2022년 9월 15일)

어느새 9월의 한가운데입니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 사유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8월 말 송파위례도서관 인문학 열전 수업 덕에 적어두었던 의 문장들 소개합니다. 아래의 문장들은 모두 1장 경제 (Economy)에 나옵니다. 말없음표는 문장의 생략을 뜻합니다. “Age is no better, hardly so well, qualified for an instructor as youth, for it has not profited so much as it has lost.” “나이가 많다는 게 젊음보다 나은 선생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이 먹는 과정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기 때문이다.” “Most of the luxuries, and many of the so ca..

오늘의 문장 2022.09.15

달 보러 망 보러.. (2022년 9월 10일)

부모도 자식도 평생 함께하진 못하지만 해와 달은 우리가 태어나는 날부터 죽는 날까지 우리를 지켜봅니다. 21세기 백년 동안 보름달은 1241번 나타나는데 완전히 둥글어 '망望'을 이루는 날은 대개 음력 16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밤 한반도 위의 달은 지난 백년 간 뜬 달 중에 떠오를 때부터 가장 완벽한 망을 이뤘다고 합니다. 서둘러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아야겠습니다. '望'은 말 그대로 '바랄 망', 가슴에 바람을 품고 달님을 우러러보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처음과 마지막을 두루 아실 달님, 달님 덕에 태어나는 시와 노래...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소서. 사람은 누구나 달님 같아 남들에게 보여주는 얼굴 아닌 얼굴 있으니 당신 닮은 그들의 노고를 위로해주소서.

동행 2022.09.10

고추 선물, 배보다 큰 배꼽 (2022년 9월 8일)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배나 배꼽을 본 적은 없고 그 속담이 은유하는 상황도 별로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제까지는! 어제 오랜만에 동생과 점심을 먹고 시골의 공동체에서 가꾼 푸성귀와 곡식을 파는 가게에 들렀습니다. 투명 비닐봉지에 든 초록잎들이 눈길을 끌기에 물어보니 고춧잎이었습니다. 베란다에서 시들고 있는 고춧잎이 떠올라 3천 원을 주고 한 봉을 샀습니다. 집에 도착해 봉지를 여니 고춧잎과 고추가 달린 고춧대가 엉켜 있었습니다. 고추를 따로 따서 팔았으면 돈을 더 많이 받았을 텐데 손이 부족해 일일이 따지 못하고 고춧대째 잘라 판 것 같았습니다. 고춧잎과 고추를 따서 분리했습니다. 빨갛게 익은 고추, 몸이 새우처럼 휜 고추, 긴 고추 등 온갖 형태의 고추들을 줄기에서 ..

동행 2022.09.08

노년일기 133: 화려한 결혼 (2022년 9월 5일)

어젠 조카의 결혼식 날, 늘 웃는 얼굴의 조카라 그런지 비가 와도 걱정이 되진 않았습니다. 옥외와 옥내를 아우르는 결혼식장은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아름다웠습니다. 의식은 옥외에서 진행되었는데 머리 위 높이 쳐 놓은 차양 덕에 신랑신부도 옥외 좌석에 앉은 하객들도 비를 맞지 않았습니다. 옥내에 앉은 하객들은 통유리를 통해 의식을 보았습니다. 종일 비가 내리다 멈췄다를 반복했지만 비도 결혼식의 화려함을 지우진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형제들, 조카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반가웠습니다. '낳아 놓으면 큰다'는 말은 옛말... 저 아이들을 저만큼 키우느라 바쁘고 힘들었을 아이들 부모들이 대견하고 안쓰러웠습니다. 결혼식장이 커서 그런지 일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주차장 관리부터 뷔페 관리까지 검은 옷을 입은 젊은이..

동행 2022.09.05

구월이 오는 길 (2022년 9월 1일)

8월 마지막 날 오후 네 시 반, 27킬로미터 떨어진 송파위례도서관을 향해 차를 타고 나섰습니다. 길엔 차가 많고 유리창엔 자꾸 눈물 같은 비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멀미와 싸우며 도서관 인근 식당에 도착하니 여섯 시 반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맑은 된장국을 먹자 점차 속이 가라앉았습니다. 단출한 저녁을 먹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났습니다. '인문학 열전'의 한 회를 맡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을 강의하러 간 것인데, 2019년에 처음 갔으니 어제가 네 번째 강의였습니다. 1845년 7월 4일 28세에 숲속 생활을 시작해 2년 2개월 2일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살았던 소로우와 그가 그때의 일을 기록해 1854년에 출간한 을 수강자들과 함께 읽다 보니 소로우와 비슷하게 오두막 생..

동행 2022.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