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133: 화려한 결혼 (2022년 9월 5일)

divicom 2022. 9. 5. 07:50

어젠 조카의 결혼식 날,

늘 웃는 얼굴의 조카라 그런지 비가 와도 걱정이 되진 않았습니다.

옥외와 옥내를 아우르는 결혼식장은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아름다웠습니다.

 

의식은 옥외에서 진행되었는데 머리 위 높이 쳐 놓은 차양 덕에 

신랑신부도 옥외 좌석에 앉은 하객들도 비를 맞지 않았습니다.

옥내에 앉은 하객들은 통유리를 통해 의식을 보았습니다. 

종일 비가 내리다 멈췄다를 반복했지만 비도 결혼식의 화려함을 

지우진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형제들, 조카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반가웠습니다.

'낳아 놓으면 큰다'는 말은 옛말... 저 아이들을 저만큼 키우느라 바쁘고

힘들었을 아이들 부모들이 대견하고 안쓰러웠습니다. 

 

결혼식장이 커서 그런지 일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주차장 관리부터 뷔페 관리까지 검은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분주했습니다.

최저임금에 일요일 수당을 얹어 받았겠지요...

 

결혼식, 결혼식장, 신랑신부 두루 아름다웠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남의 부러움을 사는 걸 매우 싫어하는 제 성격 때문일 겁니다.

주변의 푸른 숲에 경탄하면서도, 이 자리에 함께한 젊은이들 중

이렇게 화려한 결혼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결혼할 나이쯤 되었을 때도 저들은

지금처럼 평등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불평등과 부의 세습 등에

너무나 익숙해서, 꿈도 꿀 수 없는 결혼식을 보아도 분노나 슬픔을

느끼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미안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은 비가 오고 더 센 바람이 붑니다.

라오스의 국립공원 이름을 딴 태풍 힌남노 때문입니다. 

한때는 빈부 구별없이 모두에게 잔인했으나 이젠 약자들에게 가혹해진

자연재해... 그래도 힌남노는 빈부를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부자들에게 가혹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결혼한 조카의 행복을 축원하며, 빗속에서도 화려했던 결혼식이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