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구월이 오는 길 (2022년 9월 1일)

divicom 2022. 9. 1. 06:06

8월 마지막 날 오후 네 시 반,  27킬로미터 떨어진 송파위례도서관을 향해

차를 타고 나섰습니다. 길엔 차가 많고 유리창엔 자꾸 눈물 같은 비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멀미와 싸우며 도서관 인근 식당에 도착하니 여섯 시 반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맑은 된장국을 먹자 점차 속이 가라앉았습니다. 단출한 저녁을 먹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났습니다. 

 

'인문학 열전'의 한 회를 맡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강의하러

간 것인데, 2019년에 처음 갔으니 어제가 네 번째 강의였습니다.

1845년 7월 4일 28세에 숲속 생활을 시작해 2년 2개월 2일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살았던 소로우와 그가 그때의 일을 기록해 1854년에 출간한 <월든>을

수강자들과 함께 읽다 보니 소로우와 비슷하게 오두막 생활을 했던

법정 스님이 떠올랐습니다.

 

7시에 시작한 온라인 강의는 9시 반 가까이 되어 끝났지만 준비했던 수업자료 중

꽤 많은 부분은 함께 읽지 못하고 수강자들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담당 사서는 강의가 예정된 두 시간을 넘겼는데도 자리를 벗어난 분이 한 분도 없다며

좋아했습니다.

 

지친 몸으로 집에 오니 커다란 선물상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황금빛 보자기에 싸인

구례 곶감... 우리 동네 감들은 아직 푸른데 구례의 감들은 어떻게 벌써 곶감이 된 걸까요?

입은 이유를 따지기 전에 곶감을 물었습니다. 반시의 향과 단맛이 피로를 씻어주었습니다.

 

곶감을 보내준 혜은 씨와 어제 저녁 두 시간여 동안 저와 함께 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 드리며, 법정 스님이 1981년 8월 30일 샬트르 성바오로 수도회 대구관구에서 열린

'전교수녀를 위한 세미나'에서 하신 강론의 마지막 부분으로 감사 인사를 갈음합니다.

제가 아는 모든 분들과 알지 못하는 모든 분들의 구월이 즐겁고 보람찬 날들로 가득하기를 빌면서...

 

"토마스 머톤의 <칠층산(七層山)>을 읽고 가장 감명깊었던 귀절은, 트라피스트가 되려는

지원자에게 당부한 원장 신부의 다음과 같은 말입니다.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공동체를 더 좋게 할 수도 있고 더 나쁘게 할 수도 있소.

즐겁게 살되 아무렇게나 살지는 마시오.'

 우리들이 깊이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여러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해주신 천주님의 뜻에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십시오." 

                           -- 법정 수상록 <山房閑談 산방한담>, 샘터사, 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