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박근혜와 인혁당 사건(2012년 9월 13일)

divicom 2012. 9. 13. 21:26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인민혁명당 사건에 대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문제는 그가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에 대해 '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고 말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법치국가에서 '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올 수는 없습니다. 하급심의 판결이 상급심에서 뒤집힐 때, 그것을 두 가지 판결이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상급심의 판결이 최종심, 즉 하나의 판결이 됩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말했으니 나라가 시끄러워진 게 당연합니다. 게다가 '인혁당 사건'은 세계 사법사상 가장 나쁜 인권 피해 사례로 기록된 사건입니다. 독재정부가 죄없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 절차를 무시하고 사형을 집행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박 후보가 사형제 옹호 발언을 하여 많은 사람들을 아연케 한 것도 그의 아버지가 '인혁당 사건'때 사형제를 악용하여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형제의 존속을 주장할 수 있어도 박근혜 씨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가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사형제를 옹호하기보다 사형제의 남용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며 사형제를 반대해야 합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자신의 발언이 문제되자 박 후보는 어제 오후 이상일 대변인 명의의 서면브리핑을 통해 "2007년 재심 판결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과거 수사기관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침해된 사례가 있었고, 이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이라 생각한다"면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픔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으니 희생자 가족들이 마침내 박근혜 씨의 사과를 받았다고 기뻐할까요? 저라면 더욱 분노할 것 같습니다. '과거 수사기관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침해된 사례가 있었고, 이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이라 생각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자신이나, 자신을 오늘에 이르게 한 자신의 아버지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말일까요? 정말 사과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저희 아버지가 18년 동안 독재정치를 하는 동안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분들이 고통당하고 생명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박 후보의 뜻을 전한 이 대변인은 "박 후보의 인혁당 관련 발언은 10일 라디오 인터뷰를 하면서 시간적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두 번의 판결(1975년 판결과 2007년 재심 판결)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한 것"으로 "두 판결 모두 유효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박 후보가 무어라 말하든 그는 아버지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사과할 마음도 없다는 것을. 어제 새누리당의 홍일표 대변인이 박 후보의 '인혁당 사건' 관련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얘기하자, 박 후보는 홍 대변인과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말하여 새누리당을 당혹케 하기도 했습니다. 

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가 국민의 수준에 맞는 사고를 하길 바라지만 박 후보는 딴 세상 사람입니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직 아버지 박정희 씨의 세상이며 아버지가 미처 이루지 못한 세상입니다.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가 자신이 통치하고 싶어하는 나라가 아닌,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주민이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선택할 수 없듯, 자녀도 부모를 골라 태어날 수 없습니다. 박근혜 씨가 박정희 씨의 딸로 태어난 것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고 운명입니다. 게다가 카리스마 있는 아버지의 맏딸이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 박근혜 후보도 아버지의 영향력을 벗어나 자신의 능력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만 나이로도 예순이 넘었고 아버지와 산 기간보다 홀로 살아온 기간이 더 기니 말입니다. 무조건 아버지의 편만 들지 말고, 무엇이 옳은가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대통령의 딸'이 아닌 '대통령 후보'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