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장준하 선생 (2012년 8월 16일)

divicom 2012. 8. 16. 11:32

제 어린 시절 아버지는 '사상계'라는 잡지를 보셨습니다. '새벽'이라는 잡지도 보았던 것 같은데 기억력이 나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제게는 어려운 책이었지만 '사상계'는 어떻게 해야 이 나라, 이 겨레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가득했습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사상계'를 구독하시던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사상계'를 창간하여 이끄는 장준하 선생이 존경스러웠습니다.


1975년 장준하 선생이 실족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걸 믿은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유신정권에 맞서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시다 정권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 생각이 사실임을 말해주는 기사가 한겨레신문에 실렸습니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를 인터뷰한 기사입니다. 


장 선생의 유골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장 선생 사후 처음으로 유골 검시를 의뢰했으며, 두개골 뒤쪽에 지름 5~6cm의 구멍과 금 간 흔적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검시를 맡은 서울대학교의 법의학 교수는 장 선생의 사인은 망치 가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 장준하 선생 의문사를 조사했던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당시에는 여러 의혹이 있었는데도 끝내 진상 규명을 하지 못했다"며 "정부당국이 다시 한번 진실 규명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장 선생 사망 당시 26세였던 장호권 씨는 처음부터 아버지가 타살되었다고 확신했으나 정보기관의 위협 속에 함구하고 24년 간이나 국외 도피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장호권 씨는 정보기관의 개입으로 직장생활은 물론 사회생활 자체를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현재는 여든여덟 살 노모 김희숙 여사와 보증금 천 만원, 월세 20만원 셋집에서 월 60만원의 연금으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가난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며 다시는 자신의 가족처럼 비참한 가족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독재기간, 특히 유신헌법이 선포된 1972년 전후 이 땅의 의식있는 지식인들이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번도 그런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국민에게 사과한 적 없는 박 대통령의 딸 근혜씨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합니다. 저도 저희 아버지를 매우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지극한 효심도 이성과 정의를 무시할 땐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장호권 씨의 말처럼 박근혜 씨가 박 대통령의 딸로 태어난 것은 숙명이지만 최소한 정치권력에 마음을 두진 말아야 합니다. 


장호권 씨는 "아버지 때 했으면 됐지, 모자랄 것 없이 다 갖췄는데 이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주면 차라도 한 잔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박근혜 씨는 자신의 롤모델이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라고 말했다는데, 저는 신문에서 그 기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 앉았습니다. 혹시 근혜 씨가 스스로를 공주라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 여왕이 되려 하는 거 아닌가... 거짓말 잘하는 것, 도박 잘하는 것... 유전인자 탓에 형성되고 발현되는 성향이 많다는데 혹시 독재도 그런 성향은 아닌지 문득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