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위로라는 것 (2012년 9월 21일)

divicom 2012. 9. 21. 07:09

추석이 가까워오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갚아야 할 빚이 떠오릅니다. 한용운 시인 식으로 말하자면 ‘빚은 빚만이 빚이 아니라 받은 것은 다 빚’이니 빌려 쓴 돈도 빚이지만 남에게서 받은 호의도 원망도 다 빚입니다. 돈 빚은 돈으로 갚으면 되지만 마음 빚을 갚기는 오히려 힘이 듭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갚나 궁리가 깊어집니다.


몇 해 전 충남 예산의 김 선생님과 연락이 닿으면서부터는 빚 갚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정성껏 키우신 사과 덕택입니다. 예산에서 서울까지 달려온 사과 상자를 열면 긴 여행에도 여전한 향기가 살아 있는 기쁨을 느끼게 했습니다. 빚진 분들에게 그 향기를 보내는 것으로 한 해의 마무리를 시작했습니다.


찬바람이 불면서 김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지만 이메일도 전화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볼라벤, 덴빈, 산바, 유독 자주 들이닥쳤던 태풍이 불안을 가중시켰습니다. 작년에 무서운 태풍 곤파스도 피하셨으니 올해도 괜찮으실 거라고 믿으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에야 통화가 되었습니다.


한나절 내내 과수원을 휩쓴 바람 때문에 사과가 다 떨어진데다 탄저병까지 돌았답니다. 반점이나 새가 쫀 흔적으로 인해 상품가치가 떨어진 ‘마른 사과’와 달리 비바람에 떨어져 상처투성이가 된 ‘젖은 사과’는 금방 상하기 때문에 팔 수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강풍 속에 날아간 창고 지붕을 고치러 올라갔다가 떨어져 다치기까지 하셨답니다.


위로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떨어져 누운 사과들 앞에서 망연자실했을 선생님의 모습, 바람 속에서 함석 조각을 붙들고 사투를 벌이다 사과처럼 떨어지는 작은 몸, 멍투성이 옆구리... 눈시울은 뜨거워지는데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화선 이쪽 제 마음을 아셨는지 선생님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도 배는 몇 개 건졌고, 아픈 것도 많이 나았고... 이러고 나면 또 좋은 날도 오겠지요. 그나저나 미안해서 어쩌죠? 선물해야 할 텐데... 꼭 보내야 할 곳 있으면 알려주세요. 다른 집 사과라도 구해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다음 날, 선생님이 떨어진 사과 사이에서 힘겹게 골라내셨을 사과 한 상자가 저희 집으로 왔습니다. 낯익은 향기가 마중물 되어 눈물을 불러냈습니다.


위로는 고통을 겪은 사람이나 겪고 있는 사람이 겪지 않은 사람에게 할 때라야 참으로 진실한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의 마음 속 절절함이 고통을 겪은 사람에게 전달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요즘 새누리당에선 대통령후보 박근혜 씨가 인민혁명당(인혁당)사건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의 유가족들에게 여러 번 사과하고 위로를 표했는데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들려옵니다.


‘받은 것은 다 빚’이라면 박 후보는 저보다 빚이 많을 겁니다. 아버지의 후광도 빚이고 그 후광의 그림자도 빚일 테니까요. 박 후보는 “과거 수사기관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침해된 사례가 있었고, 이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이라 생각한다...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만 들어서는 박 후보가 왜 사과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건과 아무런 상관없는 제3자가 남이 저지른 일에 대해 사과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인혁당사건 유가족들이 박 후보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요. 그 일은 당신 아버지의 정부가 저지른 일인데 당신은 아버지와 다르잖아요?’라고 하는 날... 그런 날이 언젠가 올까요? 지금 그가 하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그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위의 글은 본래 한겨레신문 '삶의 창'의 원고로 썼지만 보내지 않고 다른 글로 대체했습니다. 사람처럼, 글에도 '운명'이란 게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