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민이 시장입니다 (2011년 11월 16일)

divicom 2011. 11. 16. 17:04

하필 박원순 시장이 취임식을 하고 있을 때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원순 시장 후보'에게 보냈던 후원금 영수증이 우편으로 도착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행한 영수증 뒷면에는 세액공제와 소득공제에 대한 안내가 있었습니다. 돈은 없었지만 꼭 그를 후원하고 싶어 빚을 내어 후원금을 보냈었습니다. 크지 않은 돈, 그것은 돈이라기보다는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응답을 받는 일은 흔치 않지만 제 기도는 응답을 받았고 박원순 씨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지난 3주일 동안 그는 제 판단이 옳았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온라인으로 중계된 그의 취임식에서 발표된 '서울시민에게 바치는 제35대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사'를 읽으니 가슴이 뭉클하고, 다른 지역에 사는 분들께 미안합니다. 부디 그분들도 머지 않아 박원순 시장과 같은 단체장을 갖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의 말대로 '시민이 시장입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입니다. 아래에 박 시장의 취임사 전문을 옮겨둡니다. 제일 마음에 드는 구절은 빨갛게 표시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서울특별시장 박원순입니다.

제가 서울시장으로 일한 지도 벌써 오늘로 21일째가 됩니다.
아직은 서울시장이라는 직책이 낯설기도 하지만 또한 벌써 수개월은 된 듯한 느낌입니다.
시정을 직접 책임져보니 서울시에는 실타래처럼 얽히고 난마와 같이 설킨 난제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주민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야하는 뉴타운사업은 저의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심해지는 전세난, 월세난, 줄어가는 일자리, 시름이 깊어가는 재래시장과 골목상권,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과 중소기업, 늘어나는 비정규직. 그 모두가 새로운 해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겨울의 폭설, 여름의 호우와 산사태가 지금부터 걱정입니다. 서울시의 빚은 산더미인데, 쓰여야 할 곳은 더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취임식이냐 스스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했습니다.
저 박원순의 취임식이 아닌, 바로 시민 여러분의 취임식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서울의 엄중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서울의 미래를 우리 함께 이야기해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지금 서울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간단하거나 녹녹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많은 문제들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그 해법을 찾는 첫걸음입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새로움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1%가 99%를 지배하는, 승자가 독식하여 다수가 불행해지는 현상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닙니다.
과도한 경쟁으로 모두가 피폐해지는 삶은, 공정한 세상이 아닙니다.
무차별적인 개발로 환경을 파괴하여 다음세대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닙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저는 무엇보다도 복지시장이 되겠습니다. 사람냄새가 나는 서울을 만들겠습니다.
강남북 어디에 살든 균등한 삶의 질, 최소한의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친환경무상급식에 이어 국공립보육시설의 확대, 여성과 장애인의 지위 개선, 시니어의 보호와 일자리 제공은 더 이상 개인에게 맡겨둘 문제가 아닙니다.

이번 겨울 저는 서울 하늘 아래에서 밥 굶고 냉방에서 자는 사람은 없도록 하겠다는 선언과 더불어
정책투어를 시작합니다. 복지는 공짜도 아니고 낭비도 아닙니다. 복지는 인간에 대한 가장 높은 이율의 저축이며, 미래에 대한 최고수익의 투자입니다. 지냐, 성장이냐의 이분법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성장이 복지를 가져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졌습니다. 오히려 복지가 성장을 견인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OECD 국가 최하위의 복지 수준이라는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야합니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임을 저는 선언합니다.

저는 서울시장으로서 새로운 서울을 꿈꿉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생태 그대로의 자연이 숨 쉬는 도시.
문화와 예술이 삶속에서 녹아있는 공간.
역사의 향기와 삶의 추억들이 되살아나는 고향 같은 서울을 꿈꾸어 봅니다.
요란하게 외치지 않아도 돋보이고, 누가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서울.
화려하지 않아도 기본이 바로 서 있고, 소박하고 검소해도 안전한 우리의 서울을 그려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저는 부정보다는 긍정의 힘으로, 갈등과 대립보다는 협력과 조정의 힘으로 시정을 이끌겠습니다.
현장에서의 경청과 소통, 공감을 통하여 시민 여러분의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시정의 단계마다, 분야마다, 시민 여러분의 소망과 의견에 서울시는 열려있을 것입니다.
서울시민 여러분은 저 박원순이 탄 서울이라는 큰 배의, 선장이고 항해사이고 조타수입니다.
서울호가 나아갈 이 새로운 역사의 물결에 함께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시민이 시장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