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장합시다! (2011년 11월 13일)

divicom 2011. 11. 13. 18:37

며칠 전 저녁 산책길에 강원도 밭에서 배추를 뽑아 싣고 온 부부를 만났습니다. 아내는 1톤 트럭의 3분의 2쯤을 채운 배추들 사이에 있고 남편은 트럭 꽁무니 길바닥에 배추를 삼각형으로 쌓아 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배추값이 너무 싸서 중간상인들에게 넘기는 대신 스스로 뽑아 싣고 왔다고 했습니다.

 

배추값 폭락으로 배추밭을 갈아 엎는 농부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던 차라 예쁜 배추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날씨는 이상하리만치 덥고 몸 컨디션이나 냉장고 형편이나 김장은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배추를 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총 아홉 포기, 그 중 한 통은 덤이었습니다.

 

배추는 막 잡은 야생 곤충처럼 예뻤습니다. 집에 있는 그릇 중엔 사온 배추 모두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그릇이 없어서 목욕탕 욕조를 빛나게 닦았습니다. 욕조에 배추를 넣고 물을 채워 하룻밤을 재웠습니다. 그렇게 하면 배추에 스민 농약도 제거되고 배추가 더욱 싱싱해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 깨끗한 물로 한 번 더 헹군 후 다시 욕조에 넣어 절였습니다. 배추 켜켜이 천일염을 뿌려 주고 욕조 바닥에 찰랑찰랑 하는 소금물에 담그어 둔 후 가끔 가서 위 아래로 뒤집어주었습니다. 그 사이 시장에 가서 갓 세 단과 쪽파 두 단, 동치미 무 한 묶음을 사왔습니다. 갓 한 단은 1,500원, 쪽파 한 단 1,000원, 무 3,500원. 큰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다듬은 갓과 쪽파를 담가 두었습니다. 무는 머리와 무청 부분을 분리해 무는 그대로 물에 담가 두고 무청은 신문지 위에 펼쳐 말렸습니다.

 

다음 날엔 소금물 속에서 하룻밤을 잔 배추를 씻어 채반에 얹어 물을 빼고, 갓과 쪽파와 무도 씻어 물을 뱄습니다. 배추에 묻은 물이 빠지는 동안 갓과 쪽파를 손가락 두 마디 길이로 자르고 무채를 만들었습니다. 미리 사두었던 마늘과 생강은 가족들에게 갈아달라고 했습니다.

 

작년에 사서 먹다 남은 고추가루와 올해 동생에게서 선물 받은 태양초 가루, 어머니가 사주신 새우젓, 마늘, 생강을 섞어 기본 양념죽을 만든 후 무채를 넣어 섞고, 마지막으로 갓과 쪽파를 넣어 섞었습니다. 간이 부족한 듯 해서 천일염을 조금 더 추가해 섞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속을 배추잎 사이사이에 넣으니 오래 먹을 김장 김치가 완성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풀죽을 쑤어 그것을 기본으로 양념죽을 만드시고 조미료도 넣으시지만 저는 그런 것을 생략한 채 가장 쉬운 방법으로 김치를 담았지만 별로 불안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도 그렇게 했지만 김치맛이 썩 나쁘지 않았습니다. 김장 김치의 깊은 맛은 재료와 사람의 노력이 절반, 시간의 도움이 절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추값은 싸지만 일도 무섭고 양념값도 비싸다는 이유로 사먹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양념값이 비싸다 해도 사먹는 김치값보다는 쌉니다. 혼자 하면 힘든 일도 가족과 함께 하면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김장을 하지 않는 집이 많아지듯 제사를 생략하는 집도 많아지고, 집에서 하던 잔치도 음식점에 가서 하는 일이 많습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서 함께 일하고 즐기는 시간이 줄어드니 가족은 N극과 N극처럼, S극과 S극처럼 서로에게서 멀어집니다. '귀찮은 일 또는 형식'이라고 생각되는 제사, 잔치, 김장이 가족의 유대에 기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조금 수고스러워도 김장하는 집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각자 성격대로 배추속도 넣어보고 서로의 입에 막 담근 겉절이도 먹여 주며 다가오는 겨울을 가족이 함께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더구나 올 가을엔 배추가 풍년이니 김치를 많이 담을수록 농가에도 도움이 됩니다.

 

김치를 넣어둘 통이 부족하기에 겉절이를 넉넉히 만들어 어머니댁과 동생들 집에 조금씩 돌렸습니다. 겉절이 양념은 김치 양념 조금에 양파와 배를 갈아 넣고 매실청을 조금 넣어 섞어 만들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늘 '남을 돕다 보면 내게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김장을 해보십시오. 그 말씀이 진리임을 알게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