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래 최초의 '(20)11년 11월 11일'이라 '빼빼로데이' 중에서도 특별한 '빼빼로데이'라고, 평생 한 번뿐인 '111111 데이'라고 장삿속 홍보가 요란합니다. 그러나 평생 한 번인 날은 오늘만이 아닙니다. 어제도 내일도, 지금 막 지나가는 시시각각 모두 평생 한 번뿐입니다. 젊은이들이 상술에 휘둘려 포장만 요란한 빼빼로를 사들고 다니는 대신 정말 중요한 일에 관심을 쏟았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역사를 기록하고 가르치는 문제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새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5.18 민주화운동 등을 삭제하기로 하여 사회 곳곳에서 역사 왜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는 오늘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이승만ㆍ박정희 독재, 그리고 5ㆍ18 민주항쟁을 삭제하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더 이상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동영 최고위원도 "이 정부에 이완용이 너무 많다. 주권 팔아넘기기에 이어 역사 팔아넘기기에 나섰다"며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세균 최고위원도 "최근의 집필 기준은 왜곡 수준이 아니라 조작 수준"이라며 "학문의 자유를 짓누르고 교육을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정치 목적으로 쓰는 정권의 말로는 비참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 최악의 자살골이 될 것"이라고 성토했습니다.
한국일보 보도를 보면 교과부가 8일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을 확정, 발표하자 역사교과서집필기준개발위원회 위원장인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가 사퇴하고 역사학계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역추위) 위원직도 사퇴했습니다. 집필기준을 만드는데 역사학계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이 교수는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갈등 조정 능력이 뛰어난 학자다. 이 분마저 사퇴한 것은 학자로서의 본분조차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집필기준 개발과정이 잘못됐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의 사퇴로 역추위의 보수편향은 더욱 심해질 거라고 합니다. 역사교육과정 개정안 고시 직전, 교과부가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임의 수정한 것에 항의해 9월에 20명의 역추위 위원 가운데 9명이 이미 사퇴한 데 이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던 이 교수마저 사퇴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역추위는 이배용 위원장(전 이화여대 총장)의 측근과 제자들, 공무원이 주축이 돼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기 힘든 구조라고 합니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브랜드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배용 씨는 역추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정부 의견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앞으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개정과정에서도 지금까지와 비슷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역추위는 교과부 장관의 자문기구에 불과함에도 역사 교육과정 개발에 깊이 관여했으며 12월에 확정될 고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도 역추위가 검토ㆍ자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학계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인재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교수)은 “학문적인 근거 없이 정치적인 이유로 교과서 집필기준이 처리됐다”며 “이는 장관이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역사학자 중심으로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김영진(민주당) 의원도 성명을 내어 “정부가 5ㆍ18민주화운동을 역사에서 지우려는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며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정상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새 집필기준을 강행한 것은 현 정부의 몰역사성과 비민주성을 드러낸 독선적 행태”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인재 교수는 “다른 교과에는 없는 자문기구인 역추위를 만들고, 이를 앞세워 역사 교육과정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바꾼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역사를 왜곡해 가르치는 것은 국민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일입니다. 현 정부는 환경 파괴, 남북관계 경색 등 무수한 오류를 범했지만 그 중에서도 왜곡된 역사 교육은 가장 비열한 범죄로 용서받기 힘들 겁니다.
잘못된 교육의 피해자가 될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평생 한 번뿐인 특별한 빼빼로데이'를 즐기는 대신 정부의 움직임을 거부하는 운동을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빼빼로는 잠시 입과 눈을 즐겁게 하지만 제대로 기술된 역사는 인류의 자산이며 나라의 바탕입니다. 나라의 바탕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교과부와 역추위를 규탄하는 푸른 목소리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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