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백화점 (2011년 8월 3일)

divicom 2011. 8. 3. 22:35

신촌에서 선배님을 뵙기로 했는데 마땅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제일 눈에 띄는 곳이 모 백화점이니 그곳 1층 로비에서 만나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백화점 이곳 저곳을 구경합니다. 사람이 많아 걸음이 느려집니다. 물가가 올라 가계가 비상이라지만 백화점과는 상관 없어 보입니다. 데이트하는 젊은이들이 백화점에 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백화점은 소비왕국입니다. 당연히 돈을 버는 사람이 와야 합니다. 대학생 중에 백화점에서 돈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버는 사람은 드물 텐데 왜 백화점에 오는 대학생이 이렇게 많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채소와 과일이 있는 지하 1층 식품부로 갑니다. 평소에 동네 수퍼와 시장에서 보던 가격의 두 배를 나타내는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문득 얼마 전에 본 텔레비전 뉴스가 떠오릅니다. 상품값의 30퍼센트인가를 무조건 백화점 측에 준다는 보도였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물건값을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백화점에 들어서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뜨거웠던 몸이 식습니다. 여름을 겨울로 만드는 냉방, 그 비용도 물건값에 포함되어 있겠지요? 어쩌면 젊은이들이 백화점에 오는 건 바로 이 냉방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시원함 또한 미끼일 겁니다. 가능한 한 오래 머물며 많은 물건을 사게 하려는 마케팅 전략일지 모릅니다.

 

선배는 저보다 더 놀라신 듯합니다. 백화점이 이렇게 화려하고 복잡할 줄 몰랐답니다. 한적한 사무실에서 조용히 지내는 분이니 놀라시는 게 당연하지요. 선배는 다른 잘 사는 나라에선 백화점이 사양길을 걷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것 같지 않다고 신기해 하십니다. 우리도 조금 있으면 그렇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늘 다른 선진국들의 시행착오를 뒤따라 겪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백화점을 나와 잠시 걷습니다. 백화점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수제비집 앞에 줄이 깁니다. 줄 끝에 서서 작은 공간을 들여다 봅니다. 벽에 붙어 있는 가격표엔 수제비 4,000 깁밥 1,500이라 써 있습니다. 초로의 세 여인은 사골국물에 수제비를 떠넣어 끓이느라 바쁘고 70세가 훨씬 넘은 듯한 할아버지가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릅니다. 세 여인 중 한 분이 우리에게 '두 사람?'합니다. 우리가 먹을 것을 미리 떼어 넣을 모양입니다.

 

마침내 우리 차례입니다. 할아버지가 노란 단무지, 빨간 깍두기와 함께 이중 스텐레스 그릇에 담긴 수제비를 가져다 주십니다. 뽀얀 국물이 시원합니다. 4,000원, 백화점에선 힘이 없던 돈이 이곳에선 충분한 힘을 발휘합니다. 선배에게서 8,000원을 받은 아주머니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정말 감사하시는 것 같습니다.

 

수제비집 앞엔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백화점 로비에 모여 있던 사람들과는 표정이 많이 다릅니다. 백화점에서 본 얼굴들보다 수제비집 앞의 얼굴들이 더 밝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백화점은 사람보다는 물건이 주인인 곳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잘 가지 않던 백화점, 앞으로는 더욱 가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아니, 가지 않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