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7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물나라에서의 한달이 끝나는가 했더니 또 비가 옵니다.
수재민들의 마음은 저 하늘보다 어두울 겁니다. 비가 그만 오고 쨍쨍한 햇살이 여러 날 계속되어도 잘 씻겨나가지 않는 게 수해의 흔적인데 또 비가 오다니...
1972년이던가 제가 마포 강변에 살 때 서울시가 유수지의 수문 조절을 잘못하여 동네가 물바다로 변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작로가 급류의 강으로 바뀌어 가재도구와 가축이 떠내려오고 집들은 물에 잠겨 물 위로 보이는 건 기와지붕뿐이었습니다. 동네에 하나 밖에 없던 높은 건물--그래봤자 겨우 6층이었지만 --로 대피하여 물 속의 동네를 바라볼 때 그 먹먹하던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기 힘들 겁니다.
물이 얼마나 음흉한 침입자인지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한강 수위가 올라간다는 뉴스를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 마당의 수채로 물이 역류해 들어옵니다. 잠시 그러겠지 하는 사이 순식간에 물은 마당을 채우고 방으로 들어가 벽을 타고 올라갑니다. 온 가족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 변치 않는 친구인 책들, 가끔 식구들을 웃게 하던 옛날 성적표와 상장들... 모두 물에 녹아 사라지거나 못 쓰게 됩니다.
지금도 가끔 책 말리던 생각이 납니다. 물 빠져나간 후 대문 밖에 함석판을 깔고 그 위에 젖은 책을 널어 말렸습니다. 처음엔 바람이 불어도 꿈쩍않는 물덩어리이던 책들이 날이 가며 서서히 말라 마침내 바람을 타고 펄럭이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길이 부끄러워 책에 시선을 주다 보면 곧 책의 재미에 빠져 누가 지나가는 것도 말을 거는 것도 모를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 받았던 수재민 위문품도 생각납니다. 라면은 먹을 수 있었지만 옷은 입을 수 없는 게 대부분이어서 보내준 사람을 욕하기도 했습니다. 물 빠져나간 방의 구들이 내려앉은 것을 모르고 방을 말리려 불을 땠다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정신을 잃은 적도 있습니다. 그 수재의 나날들처럼 열심히 기원하던 시절도 없을 겁니다. 제발 이제 비 좀 그치게 해달라고 밤낮 하늘 보며 기도했으니까요.
그때는 영영 계속될 것 같던 비와 수해와 우울한 기억들도 결국은 모두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모든 일은 지나간다, 아무리 괴로운 일도 결국은 지난 일이 된다는 진리를 생각합니다. 그 진리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나 우리를 위로하는 믿음직한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저를 도왔듯 수해를 입은 분들을 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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