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글씨 쓰는 손 (2011년 7월 18일)

divicom 2011. 7. 18. 08:01

사람들은 자꾸 몸을 잊어갑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빨리 잊혀지는 건 손인 듯합니다. 글씨 쓰던 손, 도시락을 싸던 손, 눈물을 닦아주던 손... 이제 모두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오늘 아침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에서 보내온 김홍묵 선배의 글 '손은 퇴화하는가'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옮겨둡니다.

 

손은 퇴화하는가


미국 인디애나 주 교육부가 오는 9월 학기부터 초등학교의 ‘글씨 쓰기’ 과목을 폐지하기로 했습니다.(7월 11일) 타이핑을 필수 과목에 넣고 손글씨 과목은 선택으로 돌린 것입니다.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일상화된 세상에 시대에 뒤쳐진 글씨 쓰기 교육은 시간 낭비라는 이유입니다.

인디애나 주정부의 이번 결정은 이미 예견된 변화입니다. 미국의 46개 주 지사들은 2009년 교육 표준화를 위해 쓰기 대신 타이핑을 넣는 커먼코어(common core:필수 과목)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그 중 41개 주는 쓰기와 타이핑을 비슷한 비중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인디애나 주는 아예 손글씨 교육을 없애버렸습니다.

미국의 쓰기 교육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하며 필기체 위주입니다. 1950년대에는 일주일에 평균 2시간을 할애했으나, 멀티미디어 교육이 도입된 2000년대에는 10분 정도로 줄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학교 진학과 함께 익혔던 영어 필기체 쓰기 펜맨쉽(penmanship)과목이 미국에서조차  사라질 운명입니다.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먹고사는 기술만 가르치냐” “필기체 교육이 사라지면 나중에 아이들은 서명도 제대로 못 할 것”이라고 염려합니다. 언론 매체들도 “손글씨 교육을 폐지하는 것은 인간 정신의 디지털 종속을 가속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중 수교 직후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자본주의체제를 배우려고 열망하는 젊은이들의 눈빛과 간체자(簡體字) 글씨였습니다. 특히 간체자는 유추할 수 없을 정도로 간략화 단순화 되어 알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저런 글자라면 서예가들이 난감해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만 국민당정부가 최근 그 간체자를 모든 정부 문서와 홈페이지에서 추방하기로 했습니다.(7월 15일) 대신 오랜 과거부터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번체자(繁體字)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마잉주(馬英九)총통은 “대만이 전통 중화문화의 수호자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번체자를  써야 한다”며 중국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 상점 등 민간업체에는 번체자 사용을 권장하기로 했습니다.

대만 정부는 지난달 28일 부터 대륙인의 대만 개인여행을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행정원은 대륙인들에게 양안(兩岸)의 문화적 차이를 체험하게 하고 번체자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 이번 결정의 배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제1야당인 민진당은 한술 더 떠 관광명소 안내판과 상점 등에서 간체자 사용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간체자는 1950~60년대 중국공산당 주도로 만들어진 간략화한 한자입니다. 간화자(簡化字)라고도 합니다.1956년 한자간화방안(漢字簡化方安) 마련 후 1964년  발표된 간체자는 모두 2,235자로, 현재 중국 대륙과 싱가포르·말레이시아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자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20세기 초, 청나라 말기부터 있었습니다. 1919년 5·4운동을 이끈 푸쓰니엔(溥斯年)은 한자를 “소와 뱀 같은 귀신의 문자”라고 혹평했는가 하면, 루쉰(魯迅 1881~1936)은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반드시 망한다”(漢字不滅, 中國必亡)고까지 강변했습니다.

아무튼 한자의 간소화는 기원전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버금가는 문자혁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간체자의 획수가 적어 배우기가 쉽고, 간체화 사업 이후 중국대륙의 문맹률이 줄고 식자율(識字率)이 늘어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쓰기가 빨라졌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화권 내의 간체·번체 갈등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아 온 홍콩, 정치적 대립관계에 있는 대만, 그리고 북미의 화교사회 등에서는 간체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적어 의사소통이 안 된다며 번체자 사용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번간지쟁(繁簡之爭)입니다. 때문에 장쩌민(江澤民)은 1992년 “모든 인쇄물에는 간체자만 사용하되, 서예에는 번체자 사용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인간을 영장류의 으뜸자리에 올려 놓은 언어와 문자. 그 문자와 어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언어는 멸실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종이 없는 사무실이 늘어나고, 젊은이나 학생들이 즐겨 사용하는 문자 메시지는 암호문처럼 변형·축약되어 독해하기도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 한글을 동티모르 찌아찌아 족에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언어와 문자는 문화적 쇼비니즘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기원전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화강암에 새긴 로제타석(rosetta stone), 중국 은(殷)왕조 때 점복(占卜)의 내용을 거북껍질이나 소의 어깨뼈에 새긴 갑골문(甲骨文), 종이 발명 이전에 대나무를 엮어 그 위에 글씨를 쓴 죽간(竹簡)들입니다. 자기나라 문화의 우월성을 보여 주는 자랑거리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초등학교 시절 먹물을 튕겨가며 습자를 익히고, 중학교때 영어 필기체를 철필로 썼던 세대들에겐 옛날의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나무 판자에 숯으로 글씨를 썼다는 링컨의 형설지공, 호롱불을 끄고도 반듯한 필체를 구사했다는 한석봉의 글씨 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겐 정신세계의 자양분이었습니다.

비록 철필이 사라지고 붓은 손에서 멀어졌지만 문호들의 육필원고, 대가들의 서화, 악성들의 친필 악보 등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작품 속에 그들의 혼과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기술문명에 계속 밀리다보면 아기를 보듬는 사랑의 손길, 맛을 내는 손끝, 일필휘지의 손놀림, 그런 손맛들도 언제쯤 아스라한 전설로 남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