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의 동료들 몇과 나무그늘에 앉아 1980년 봄을 얘기했습니다. 인쇄 직전의 신문 대장을 들고 시청에 설치된 언론검열단에 가 검열 받던 얘기... 전두환 정권에 의해 신문사에서 쫓겨났던 얘기... 쫓겨난 사람은 쫓겨난대로 남은 사람은 남은대로 모두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쫓겨난 사람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느라 바빴고 다른 직장에서 소담스런 꽃을 피운 사람들도 있지만, 남은 사람들은 평생 '왜 나는 살아남았을까' '내가 비겁하게 살았던가' 의문과 죄의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31년, 그때를 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상처투성이 마음을 7월 녹음 아래 꺼내어놓고 '죄 없이 쫓겨난 자의 고통'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얘기하다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한 번이라도 함께 전투를 치러본 사람들은 전우입니다. 그들이 서로에게 품은 믿음과 사랑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다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으며 옛 전우들에게 여전한 사랑과 존경을 바칩니다. 박희자, 육홍타, 박인숙, 김윤자... 어제 만났는데 벌써 그리운 이름들입니다. 아, 참, 어제 그 자리에 나오라고 독려해주신 홍선희 선배께도 깊이 감사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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