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에 결혼하여 30여 년 살다보니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면 전 인류를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 속엔 모든 사람이 나눠 갖고 있는 훌륭한 점과 그렇지 못한 점이 다 들어 있습니다. 훌륭한 점이 발현될 때 그를 사랑하긴 쉽고 그렇지 못한 점이 드러날 땐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의아해하게 됩니다. 이래저래 남편 사랑, 아내 사랑만큼 어려운 사랑도 없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두 남자 얘기를 읽었습니다. 인천시장을 지낸 안상수 씨(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보온병' 안상수 씨가 아닙니다)는 작년에 별세한 아내가 졸업한 학교에 자신과 아내가 살던 아파트를 기부했다고 합니다.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며 "꿈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고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아내의 모교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안 씨의 부인 정경임 씨는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를 나와 안 씨와 결혼했는데 이듬해인 1984년 뇌졸중의 일종인 모야모야병으로 쓰러졌다고 합니다. 1년 뒤 일어났지만 1999년 8월 다시 쓰러졌고 숨질 때까지 식물인간 상태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이화여대는 안 씨가 기증한 아파트로 '정경임 글로벌 인재 육성장학금'을 만들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 한 남자는 1999년부터 10년간 영국 왕실 계관시인을 지낸 앤드루 모션 씨입니다. 그는 지금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중인데, 서울에 오기 전 한국인 부인 김경수 씨의 어린시절 얘기를 듣고 한국에 대한 시를 두 편 썼다고 합니다. 그는 이제 한국을 직접 체험했으니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거라고 기뻐합니다. 뉴욕에서 살던 김 씨와 런던에서 살던 모션 씨는 5년 전 미국에서 열린 문학행사에서 처음 만나 1년 간 뉴욕과 런던을 오가다가 결혼했다고 합니다.
저는 오래전 시산문집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에 '키우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자라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내를 향한 안 씨와 모션 씨의 마음이 사랑인 것은 그 분들이 아내를 통해 아내 '너머'를 보며 서로 자랄 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키우기 때문일 겁니다.
정경임 씨의 평안을 빌며 그의 영혼이 내내 안상수 씨를 위로하기 바랍니다. 김경수 씨와 모션 씨의 사랑을 축하하며 그 사랑이 아름다운 시로 열매맺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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