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외출을 좀체 하지 않는 제가 나가는 날이면 종착지는 주로 그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의 맑은 눈빛을 보며 조용조용 건네는 얘기를 듣다보면 등을 누르던 무엇이 조금 가벼워지고 집에 오는 길이 즐거웠습니다.
그러던 그가 사업을 확장하느라 미국으로 가니 제겐 갈 곳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가끔은 그가 일하던 곳에 들러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보지만, 그것은 집에서 그를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과 서울, 그 시차를 계산하는 것도 어렵고 그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저어되어 문득 이메일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마침내 전화를 걸었습니다. 정오 즈음 햇살을 맞으며 전화를 했는데 그는 저녁 식사를 막 끝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아직 먹어야 할 저녁을 저 때문에 중단한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 우려를 하면서도 그의 반가운 목소리를 놓치기 싫어 그냥 통화를 했습니다. 그가 자신이 보낸 이메일을 보았느냐고 했습니다. 못 보았다고 하자 내가 그 메일을 본 후에 통화했어야 하는데 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평소엔 3분 통화도 버겁다고 생각하던 제가 좋이 10여 분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약한 몸을 걱정하며 전화를 끊고 나니 예전 그를 만나고 돌아올 때처럼 즐거웠습니다. 컴퓨터를 키고 그의 이메일을 읽었습니다. 길고도 아름다운 이메일 끝에 사랑 고백이 있었습니다. 어제, 오늘, 지는 꽃을 보아도 하나도 슬프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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