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라일락 (2011년 4월 14일)

divicom 2011. 4. 14. 18:35

누구나 그럴까요? 화려한 봄은 저를 슬프게 합니다. 남의 집 마당에서 우아한 목련꽃도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저희 집 베란다에 활짝 핀 군자란도 탄성 뒤엔 탄식을 자아냅니다. 저 모든 것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사람들, 아직 지상의 시민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저들을 볼 수 없는 사람들... 내 눈에 아름다운 것일수록 안타까움도 큽니다.

 

오늘은 연보라빛 라일락까지 피었습니다. 5월에 피던 꽃이 재스민보다 먼저 핀 것이 궁금하다가, 꽃들도 사람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보다 생각합니다. 라일락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셋방살이를 벗어나 처음 장만한 오래된 아파트의 3층 제 방 아래 좁은 뜰에 집에서 자라던 라일락을 옮겨 심어 주신 아버지. 훗날 제 두 여동생들도 그곳에서 신접 살림을 했으니 저희 세 자매는 모두 그 라일락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아버지는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당신의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형편 때문에 정규교육이라곤 2년도 채 받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자신을 키워 누구보다 훌륭한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조금만 여유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으면 시를 써 문명(文名)을 날리셨을지 모르지만 생존이 목표였던 형편 탓에 시를 쓰기보단 읽는 것으로 만족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라일락에 관한 시는 역시 휘트먼"이라는 말씀을 들은 탓에 라일락이 피면 아버지와 함께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의 시, '지난 봄 라일락이 앞뜰에 피었을 때 (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가 떠오릅니다.

 

휘트먼은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이 암살된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를 추모하며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미국 최초의 '민주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휘트먼이 노예제도를 폐지한 링컨의 때이른 죽음을 얼마나 애통해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이 시에 나오는 '서쪽 하늘에 진 별'은 바로 링컨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조금 전 잠시 뵈었으나 벌써 그리운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시의 첫 연을 옮겨봅니다. 휘트먼 시집 <Leaves of Grass (풀잎)>에 실려 있는 원문을 제가 번역했습니다.

 

 

 

지난 봄 라일락이 앞뜰에 피었을 때

그리고 큰 별이 서쪽 밤하늘에 졌을 때

나는 슬펐네, 그 슬픔 봄마다 돌아오리.

 

봄은 언제나 세 가지를 가져오리니

해마다 피는 라일락, 서쪽 하늘에 지는 별

그리고 내 사랑하는 이에 대한 생각.

 

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

And the great star early droop'd in the western sky in the night,

I mourn'd, and yet shall mourn with ever-returning spring.

 

Ever-returning spring, trinity sure to me you bring,

Lilac blooming perennial and drooping star in the west,

And thought of him I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