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책 읽기를 우연에 맡깁니다. 책꽂이에 손을 뻗어 아무 책이나 한 권 꺼내 읽는 겁니다. 오래전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국문학 교수인 외삼촌께 털어놓았을 때, 삼촌은 해석학 책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사서 읽었던 책 중 하나가 이 책, <해석학과 문학비평>입니다. 책의 저자는 데이빗 호이 (David Couzens Hoy), 원서의 제목은 <The Critical Circle: Literature and History in Contemporary Hermeneutics>입니다. 원제를 그대로 옮기면 '비판적 순환'이지만 그 말은 이 책의 부제로 쓰였습니다.
'해석적 순환'은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부분과 전체가 어떻게 순환의 방식으로 관련되는가'를 기술합니다. 즉 "전체를 이해하려면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반면, 부분을 이해하는 데에도 전체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초기 해석학에서는 이러한 순환이 텍스트 이해를 위해 사용되었지만,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의 해석 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질과 상황에 대한 이해의 근본 원리"가 되었습니다.
이 책의 83페이지에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중 하나인 에스킬루스(Aeschylus: 524/525 BC – 455/456 BC)가 쓴 구절 "고통을 통해 배운다"는 말을 가다머가 분석한 문장이 나옵니다. 고개가 끄덕여져 여기에 옮겨봅니다.
"인간이 고통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은 구체적인 경험이라기보다는 인간 실존의 한계에 대한 통찰, 신성the divine에까지는 이를 수 없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에 대한 통찰이다... 그러므로 경험Erfahrung은 인간의 한계성의 경험이다."
이 문장을 읽으니 왜 자주, 사유하며 아픈 사람이 늘 건강하여 고통을 모르는 사람보다 동료 인간들에 대해 깊이 연민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자인 이경순 당시 전남대학교 교수는 꽤 긴 '주'를 달아놓았습니다.
"가다머는 체험이 항상 근본적인 부정을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체험에서 배운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로부터 배운다는 것을 뜻한다. 가다머의 정의는 긍정적인 체험이 있다는 점에서 반대될 수도 있으며 영어의 'experience'라는 용어는 확실히 그러한 반대의 가능성을 허용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독일어 'Erfahrung'과 'Erlebnis'의 차이에는 구별이 있으며 영어로 번역할 때는 이 두 개의 단어가 다 'experience'로 된다. 가다머는 'Erlebnis'라는 용어를 보통 고유하고 비반복적이며, 흔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체험'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고 'Erfahrung'은 반복적이며 이것만이 실천적 지식을 허용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 묻습니다. 어려운 책을 뭐하러 읽느냐고? 그것은 어려운 책이 어려운 일처럼 우리의 지평을 넓혀주기 때문입니다. 별 두뇌활동 없이 읽을 수 있는 쉬운 책만 읽으면 마음은 편해도 자신의 정신 지평을 넓히진 못할 겁니다. 사람은 도전을 통해 발전하고 어려운 책은 지적인 도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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