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재학 중 연애 결혼해 다섯 살짜리 딸을 둔 28세의 부부가 종교 문제로 갈등하다가 법원에 소송까지 내어 이혼했다는 보도를 보니 참 씁쓸합니다. 이 보도로 인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종교란 무엇이며 결혼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종교와 결혼은 공통적으로 사람이 불완전하다는 인식으로 인해 생겨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알고 아는 대로 행하는 완전한 사람에게는 종교도 결혼도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어 공부하고 기구하는 게 종교이며, 자신만의 삶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타인을 만나 완전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결혼일 것입니다.
이번에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재판장 안영길)의 판결을 통해 이혼한 부부의 경우, 남편은 유교적 전통이 강한 불교 집안 출신이고 아내는 교회 목사의 딸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어려서 그렇다 해도 양가의 부모들이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허락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결혼한 후에 며느리나 사위를 각기 자기네 종교로 개종시키겠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아무리 결혼하지 말라고 말려도 듣지 않으니 그럼 일단 해보라고 했던 걸까요?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폭발한 건 일요일이었던 2007년 설날이었다고 합니다. 함께 살던 시부모가 큰집에 차례 지내러 가자고 하자 아내는 교회에 가야 한다며 거부했고, 시부모가 절은 안 해도 되니 어른들에게 인사나 하고 오자, 교회는 오후에 가도 되지 않느냐고 하자, 앞으로 절대 제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시부모가 그러려면 집을 나가라고 했고 아내는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고 합니다.
부부는 두 달 후 다시 만났으나 남편이 아내가 시부모에게 보인 행동을 문제 삼아 이혼 얘기를 꺼냈고 아내는 아이를 남편에게 남긴 채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양가 부모들도 만났지만 종교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으며, 남편은 아내와 별거한 뒤 다른 여성과 만나면서 2009년 아내를 상대로 이혼 및 양육권 소송을 냈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종교 문제로 부부가 다투고 재결합을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혼인관계는 파탄에 이른 것으로 봐야 한다"며 "파탄에 이른 경위와 현재 상황 등을 보면 아이는 남편 쪽에서 기르는 게 옳다"고 밝히고, 두 사람은 이혼하고 아내는 딸이 성년이 될 때까지 남편에게 매달 3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3천만원의 위자료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종교 문제로 힘들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결혼한 책임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현명한 판결입니다.
종교 갈등으로 싸우는 부부의 관계는 이혼으로 끝낼 수 있지만 종교 갈등에 휩싸인 사회나 국가에겐 해결책이 없습니다. 위 부부의 경우에서 보듯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의 '믿음'을 양보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지금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종교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에게 자신의 '믿음'이 소중한 만큼, 남에게는 그 사람의 '믿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안의 평안과 나라 안팎의 평화를 위해 종교적 믿음 대신 인간적 믿음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종교적 믿음이 타 종교와의 불화를 부추기는 반면 사람이 사람에 대해 갖는 믿음은 사람 사이의 우정은 물론 사회적 유대까지 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사로잡힌 신자는 줄고 믿음직한 불신자는 늘어나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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