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술 마시는 여자 (2011년 1월 24일)

divicom 2011. 1. 24. 15:53

남성 알코올 중독자 수는 줄어드는데 여성 알코올 중독자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2005년엔 9,638명이었는데 2009년엔 13,035명이 되었다고 하니까요. 오늘 중앙일보가 알코올질환 전문병원인 다사랑병원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것을 보면 남성환자는 2008년 하반기 703명에서 2010년 하반기 568명으로 줄었는데 여성환자는 같은 기간 170명에서 195명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여성이 술을 마시는 건 외로움과 우울증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김대진 교수는 “할머니들 시대엔 한 집에 여러 세대가 같이 살아 평생 홀로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요즘엔 자녀와 남편이 모두 나가면 대부분 주부 혼자 집에 남게 된다... 이런 빈둥지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성은 우울증·소외감·허탈감 때문에 한두 잔 술을 시작해 습관이 되고, 결국 알코올중독자로 이어진다”며, 남편의 외도, 무관심, 자녀의 출가, 무시, 외면 등이 음주습관을 더욱 부추긴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술은 남성보다 여성의 건강에 더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여성은 같은 기간,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남성보다 2~3배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는데 그 이유는 여성의 술 해독력이 남성의 50% 수준인 데다 여성의 뇌와 간이 남성에 비해 술에 훨씬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사랑병원 이종섭 원장은 우리나라 여성 알코올중독자의 60~70%는 우울할 때 부엌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 ‘키친 드링커(kitchen drinker)’라고 합니다. 처음엔 우울증을 극복하려 한 두잔 마시지만 내성이 생기면서 우울증이 더 깊어져 다시 술을 부른다는 겁니다.

 

이 원장과 김 교수는 여성의 알코올 중독이 늘어나는 것은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도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한 잔 받으면 한 잔 주는 식으로 모든 사람이 같은 양의 술을 마셔야 하는 우리의 회식 문화가 여성의 몸을 병들게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이 원장은 남성은 10~20대부터 술을 접해 비교적 방어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폭탄주 회식문화를 시작하지만 여성은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술을 ‘강요’당한다고 합니다. 그는 “같은 입사 동기가 같은 양의 술을 10년간 마셨을 때, 여성이 알코올성 치매에 걸릴 확률은 남성의 2~3배”라고 말합니다. 여성 알코올중독자의 경우 뇌의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 부분과 성격을 좌우하는 전두엽이 남성보다 더 많이 쪼그라들 뿐만 아니라 간경화도 남성에 비해 더 빨리 진행되며, 알코올이 여성 호르몬을 교란시켜 각종 내분비계 질환과 골다공증도 가속화한다고 합니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남궁기 교수는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 아내가 남편을 병원에도 데려가고, 돈도 벌고 육아도 책임진다. 하지만 여성 알코올중독자의 남편은 이를 숨기고 핍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남성과 달리 여성 알코올중독자는 소외당한다는 기분 때문에 술을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특히 폐경기 이후, 자녀가 모두 출가한 다음에는 각별한 대화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저도 한때 매일 술을 마셨던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시대와 사회가 술을 권한다며 연일 마셔대고 귀소본능 덕에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나마 혼자 마시지 않고 동료나 친구들과 마셨기에 알코올중독에까지 이르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체질과 체력으로는 술을 이기지 못했지만 길을 잃은 마음이 '머리끝서 발끝까지 알코올 소독'을 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의 음주 덕에 뇌의 해마 부분과 전두엽이 쪼그라들었는지 그렇지 않아도 나빴던 기억력이 더 나빠지고 말았습니다.

 

빈 집에 혼자 있어 외롭고 우울해서이든 마음이 길을 잃어서이든, 혼자서 매일 하는 폭음은 자해행위입니다. 남편과 자녀들이 다 나간 후 조용해진 집을 '빈 둥지'라고 인식하는가, '마침내 얻은 자유'라고 인식하는가는 삶에 대한 각자의 태도에 달려 있을 겁니다. 삶을 매일 쌓아가야 하는 탑이나 매일 개선해나가야 할 상황으로 인식하는가, 다 만들어진 냄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지요.

 

냄비는 남이 넣어주는 것을 담고 남이 붙여주는 불에 자신을 맡겨 국을 만들고 찌개를 끓여냅니다. 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무리 다양해도 냄비는 그냥 냄비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틀에 맞추어 만들어진 냄비가 아닙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끝없이 더 나은 상태, 더 높은 상태를 향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홀로 있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이 아닌 자유로운 시간, 자신에게 투자하여 자신을 개선시킬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아무도 없는 집, 내 일거수일투족이 의식에 투영되는 텅빈 집에서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는 부엌 찬장의 술병 대신 언젠가 읽다둔 책을 펼치거나, 거실이나 방 한가운데 눈을 감고 앉아 '지금 내게 술을 권하는 자는 누구인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남이 쓴 글에서 혹은 편하게 시작한 명상에서 자신을 만나다보면 자신이 자신의 제일 좋은 친구임을 깨닫게 되고, 다시는 외로워지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