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YTN! (2011년 1월 20일)

divicom 2011. 1. 20. 11:31

YTN(와이티엔)이 내일 방송 예정이었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의 인터뷰를 보류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보니 1990년대 초 제가 연합통신에 다니던 때가 생각납니다. '연합통신'이 'YTN'과 '연합뉴스'로 바뀌었지만 구태는 여전한가 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합니다.

 

그때는 노태우씨가 청와대 주인 노릇을 할 때였습니다. 연합통신 국제국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정치뉴스 해설을 썼다가 부장으로부터 "노태우씨를 싫어하나봐요?"라는 이상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노태우씨를 싫어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답하고, 기사와 제 개인적 호불호(好不好)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장은 연합통신은 KBS와 MBC 등이 대주주로 되어 있다며, 기사를 쓸 때 정부가 좋아하지 않는 방향으로 쓰면 안된다고 친절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연합통신에서 보낸 3년 동안 저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안락한 시민의 비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비굴'은 목숨이나 생존이 경각에 달한 사람이 취하는 태도로만 알고 있었으나, 그곳에서 안락하게 사는 사람들도 비굴할 수 있으며 그건 그들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안락을 잃을까봐 지레 겁내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 경향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YTN 사측은 박원순 이사가 탈세와 공금 횡령 의혹으로 고발됐다는 내부 정보보고를 이유로 방송을 보류했다고 합니다. YTN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공추위)는 성명을 내어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고 수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 개인으로부터 일방적 고소나 고발을 당했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내리는 것이 합당한가” 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사측은 제작진이 인터뷰 대상자 후보로 올린 윤도현씨에 대해서도 ‘노사모’ 가입 전력을 이유로 섭외 직전 ‘방송 불가’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공추위는 “보도제작국은 처음 박 상임이사의 인터뷰 섭외를 보고 받고 ‘아주 훌륭한 사람인데 잘 했다’고 환영했다... 그러나 ‘왜 박원순을 섭외했느냐’는 윗선의 호된 질책을 받은 뒤 상황이 달라졌고 ‘정치적 문제는 질문을 피한다’는 전제아래 촬영이 성사됐다”고 밝혔습니다. 촬영은 지난 14일에 끝났으나 법조팀이 17일 오후 사내 정보보고 게시판에 ‘박 상임이사에 대한 고발’ 내용을 올리면서 방송 보류 지시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공추위는 “일부에서는 YTN에도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말한다”며 “완성된 블랙리스트가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블랙리스트가 계속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하고, “정부 여당과의 친밀도를 기준으로 출연 인사를 정해야 한다면 차라리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이 낫다”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를 비판하는데 무한한 자유를 누렸던 언론은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 비판에 몸을 사리다가, 종편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는 경쟁적으로 정부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이런 언론기관 같지 않은 언론기관의 '윗선'들은 청와대나 다른 정부기관에서 뭐라고 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기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 능력 덕에 출세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정치 상황을 보고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법은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어떤 음모도 밀실의 야합도 조만간 백일하에 드러나는 열린 사회이며 한국만이 이 세계적 

추세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YTN의 프로그램이 권력의 비위를 거스를까봐 전전긍긍하는 사측이 이 사실을 깨닫고 공추위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YTN 노조의 용기있는 저항에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