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눈길 (2010년 12월 15일)

divicom 2010. 12. 15. 21:55

오늘 아침 서울 기온이 영하 11도, 내일 아침엔 영하 12도까지 내려간다고 합니다. 남녘에 눈이 내려 쌓일 거라는 예보를 들으니 작년 겨울 눈 쌓인 학교 운동장에서 떼굴떼굴 구르던 생각이 납니다. 한참을 구르다 자연히 멈추었는데, 눈밭이 어찌나 편한지 안방에서처럼 누워 얼굴에 떨어지는 눈을 맞았었지요. 눈이 오면 무조건 나가보세요. 눈길을 걷다가 나동그라지거나 눈밭에 한 번 누워 보세요. 김기택의 시 '눈길에 미끄러지다'에 공감하며 그 하얀 순간을 즐겨 보세요.

 

 

"갑자기

말을 듣지 않는 몸무게가 이상하였다.

기둥처럼 땅에 박힐 것 같은 튼튼한 다리 하나를

반질반질한 눈길이 살짝 놓아주었을 때

느닷없이 땅을 잃어버린 몸무게는

공중에 뜬 느낌이 이상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때마침 땅을 디딜 차례가 된 다리 하나가

얼른 몸무게를 받쳐주려 하였으나

눈길은 더 힘차고 경쾌하게

그 다리마저 오랜 의무에서 해방시켜주었다.

좌우에 두 팔이 있었으나

그것은 깃털 없는 두 개의 막대기일 뿐이었다.

몸무게는 허공에 낮게 떠서

무거워질 만큼 무거워졌다가

씩씩한 발걸음처럼 힘차게 바닥에 내리꽂혔다.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두 팔과 두 다리는 하릴없이 몸무게에 붙어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렸다.

성급한 마음이 얼른 일으켜 세우려 하였으나

한번 땅맛을 본 몸무게는

길바닥에 편히 누워 좀처럼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2003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