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건강 진단 (2010년 12월 9일)

divicom 2010. 12. 9. 16:14

건강보험에서 실시하는 정기 건강검진이 있습니다. 나이든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짝수 해에 태어난 사람은 짝수 해에, 홀수 해에 태어난 사람은 홀수 해에 건강진단을 받으라고 합니다. 전에도 올해에도 받지 않았더니 가족들이 채근을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지난 밤부터 금식한 후 병원에 갑니다. 건강검진센터에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위 내시경을 하려는 사람들이 대합실에 가득합니다. 저는 내시경을 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보다 검사가 빨리 끝납니다. 

 

가는 길, 오는 길 건강진단에 대해 생각합니다. 건강진단을 받는 건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라고들 말을 하지만, 건강하면 오래 사는 게 일반적입니다. 늘어나는 수명과 보편화되어가는 건강진단 사이에는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을 겁니다.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으며 건강관리를 하다 보면 죽음은 언제 준비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 살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잘 죽기 위해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병원과 은행은 가지 말라고 했던 미국의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 (Scott Nearing:1883-1983)과 음악가인 그의 아내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 1904-1995)이 떠오릅니다. '단순하고 조화로운 삶'을 찾아 도시를 버리고 버몬트의 숲속에 들어간 두 사람은 스콧은 100세, 헬렌은 90세가 넘도록 살았습니다. 스스로 지은 집에서 스스로 농사지은 과일과 곡물을 먹는 '조화로운 삶'을 살며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헬렌이 쓴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죽음은 전세계에 걸쳐 수백만 가지 방법으로 순간순간마다 일어나고 있다. 존재는 죽음으로 자신을 새롭게 한다. 죽음은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이다. 삶은 다만 죽음을 향한 순례이기 때문에 죽음은 삶보다 더 신비로운 것이다... 죽음은 여러 해 동안 갇혀 있는 사람이 간절히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오늘 내 앞에 있다." 말없음표 앞의 네 문장은 라즈니쉬의 강연에서 따 온 것이고 뒤의 한 구절은 <이집트 사자의 서: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건강과 장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가끔은 죽음에 대해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의 건강검진에 많은 비용을 쓰는 정부가, 국민들이 품위있는 죽음을 죽을 수 있게 돕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한 해가 '죽어가는' 12월,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돌아보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