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자로의 고통 (2010년 12월 7일)

divicom 2010. 12. 7. 18:38

선배 한 분 후배 한 분을 만나 점심을 먹고 찬 바람 속을 걷다 집으로 향했습니다. 갑작스런 추위에 지친 어둠이 저보다 먼저 와 골목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어둠을 가르며 조금 전 나눈 얘기들을 떠올렸습니다.

나라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 이 불확실한 삶도 언젠가는 확실한 역사가 되겠지요? 물론 그 역사가 꼭 진실을 말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책꽂이에서 아무 책이나 한 권 집어듭니다. 서른 셋 젊어서 돌아간 나카지마 아츠시의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입니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허 나라에서 초 나라로 가는 길에 홀로 공자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걷다가 한 노인을 만났답니다. 노인이 자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닭을 잡고 기장으로 밥을 지어" 대접하고 탁주까지

나눠 거나해지더니, 자신은 거문고를 타고 두 아들은 노래를 부르게 하더랍니다. 노래가 끝나니 노인이 자로에게 말하더랍니다.

 

"육지를 가는 데는 마차를, 물을 가는 데는 배를 사용함이 옛부터 정해져 있는 이치지요. 지금 육지를 가면서 배를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어찌함인지요? 요즘 세상에 주(周)의 옛 법을 시행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육지를 가면서 배를 사용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사람들에게 주공(周公)의 옷을 입히려고 하면 모두 놀라 찢어버리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봅니다." 자로가 공자의 제자임을 알고 한 말이지요. 노인은 또 "다 즐기고 나서 비로소 뜻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요"라고 덧붙였답니다.

 

자로는 노인의 한가로운 삶이 '하나의 아름다운 삶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속세를 떠나는 것은 본디 즐거운 일이지요만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다 즐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구구한 일신을 청결히 하고자 하여 대륜(大倫)을 거스르는 것은 인간의 도가 아니지요. 저희들도 지금 세상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리란 것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도를 논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가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도를 외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자로는 다음날 아침 노인의 집을 나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답니다. 점심 때가 되어서야 멀리 푸른 밀밭

사이로 놓쳤던 일행이 보이더랍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꺽다리 공자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자로의 가슴이 죄는 듯 아프더랍니다.   

 

헤어지기 직전 선배님이 사주신 책은 <Justice>. 먼저 자리를 뜬 후배로부터는 너무 잘생겨 '별'이라 불린다는 대추를 받았습니다. '도가 없는 세상'이라도 사랑이 있으면 견딜 수 있겠지요? 김 선배님, 경희씨,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