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아웅산 수치 (2010년 11월 25일)

divicom 2010. 11. 25. 10:26

7년간의 가택연금에서 벗어난 미얀마의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여사가 23일 십년만에 양곤 공항에서 둘째아들 킴 아리스와 만났다고 합니다. 수치 여사는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고 하고 아들은 겉옷을 벗어 자신의 팔에 새겨 넣은 공작새와 별 문신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싸우는 공작'은 수치 여사의 별멍이며 그가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이번 만남은 미얀마 군정이 국제사회의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이 아들의 입국을 허용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2000년 12월에 마지막으로 만났습니다. 수치 여사의 큰아들 알렉산더는 1991년에 수치 여사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가택연금 상태인 그를 대신해 대리 수상한 적이 있지만 이번엔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치여사는 미얀마 독립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아웅산 장군의 딸입니다.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 현대군을 창설한 사람으로 영국의 식민지배(1886-1948)로부터 미얀마를 독립시키려 협상하다 1947년 정적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미얀마는 1948년 1월에 독립, 민주 정부를 세웠으나 1962년 네윈 장군의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수치여사의 어머니는 민주정부의 중요한 정치가로 1960년 주 인도와 네팔 대사로 부임했고, 수치여사도 어머니를 따라가 1964년 뉴델리의 레이디 스리람 대학에서 정치학 학위를 딴 후 옥스포드대학교의 세인트 휴즈 대학에서 계속 공부, 철학, 정치학, 경제학 학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뉴욕시에 거주하며 유엔에서 일하다 대학 시절에 만난 쿠바 태생의 티벳문화 학자인 마이클 아리스(Michael Aris)와 1972년에 결혼했습니다. 이듬해에 큰아들 알렉산더를, 1977년엔 둘째아들 킴 아리스를 낳았습니다. 1985년 런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수치여사가 1988년 편찮은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귀국하지 않았다면 단란한 가정을 이룬 성실한 학자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가 그런 삶을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간호하러 귀국한 수치여사는 군사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시위와 유혈진압을 목격하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 NLD를 창설, 반정부활동을 벌여 1989년부터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정부는 1990년 5월 근 30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로운 선거를 허용했고 NLD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정부는 선거 결과를 무시했습니다. 수치여사는 지난 23일 풀려날 때까지 21년 동안 15년을 가택연금 상태에서 보냈습니다.

 

수치여사와 남편 아리스는 1989년이래 겨우 다섯 번 만났고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95년 크리스마스때라고 합니다. 1997년 아리스가 전립선암 판정을 받자,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던 코피 아난과 교황 바오로 2세 등 무수한 저명인사들과 단체가 아리스에게 입국비자를 내주라고 버마 정부를 압박했으나 정부는 비자를 내주는 대신 수치여사의 출국을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수치여사는 한번 출국하면 재입국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여 출국하지 않았습니다. 아리스는 1999년 3월 자신의 53회 생일 숨졌습니다. 엊그제 수치여사를 만난 둘째 아들 킴 아리스는 이번 버마 체류 중에 출가(出家)할 것이라고 합니다.

 

*'미얀마'와 '버마': '버마'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이 나라를 부르던 영어 명칭이라고 합니다. 1989년 정부가 식민지 시대의 공식 영어 명칭들을 바꾸면서 국가명도 '버마' 대신 '미얀마(Myanmar)'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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