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대종상영화제의 별들 (2010년 10월 30일)

divicom 2010. 10. 30. 09:14

어젯밤 서울방송(SBS)에서 생중계하는 '대종상 영화제'를 보며 행복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가 최우수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시나리오상 등 4관왕을 차지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시'처럼 아름다운 시나리오를 쓴 이창동 감독, 그 시나리오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해낸 윤정희 씨와 김희라 씨의 연기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그보다는 그 자리가 우리 사회 다른 부문에 결여된 중요한 것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영화계엔 무엇보다 세대의 공존과 하모니가 아름답게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인기상'은 원빈, 최승현, 이민정 등 젊은 배우들이 나눠 가졌지만, '자랑스런 영화인상'과 '영화발전공로상'은 원로배우 신영균 씨와 최은희 씨의 몫이었습니다. 나이 든 배우에게 기계적으로 주는 상이 아니고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공로자들에게 주는 상이었습니다.

 

닮고 싶은 선배와 원로를 갖는다는 건 축복입니다. 젊은 정치인들이 닮고 싶어할 선배에 비해 젊은 영화인들이 닮고 싶어 할 선배가 훨씬 많을 겁니다. 평생 온몸으로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꼿꼿이, 아름답게 살아온 최은희 선생, 500억 원이라는 거금을 영화 발전을 위해 내놓고도 말을 아끼는 신영균 선생, 16년 만에 출연한 영화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몇 년 후 다시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응원해달라는 60대의 윤정희 씨. 아무도 흉내낼 수 없을 기막힌 연기를 선보여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분의 가슴 속에 계속 살아남겠습니다"라는 겸손하고도 당찬 소감을 들려준 김희라 씨.  

 

그들의 출연이 감동적인 만큼, '남우주연상'과 '남자 인기상'을 수상하고도 시종일관 담담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고민하는 배우의 모습을 보여준 원빈 씨를 보는 기쁨도 컸습니다. 기대를 갖고 지켜볼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시상식장에선 자꾸 고개를 숙여 진행자의 지적을 받았지만, 먼훗날 어제의 선배들처럼 멋진 모습으로 마이크 앞에 섰을 땐, 그 아름다운 얼굴을 잘 볼 수 있게 해주기 바랍니다. 

 

참 오랜만에 시상식다운 시상식, 수상자다운 수상자들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더 자주 한국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겠습니다. 일년에 한 편만이라도 '시'와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시'가 재상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종상 영화제'를 빛낸 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