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뒷걸음 우체국 (2010년 10월 29일)

divicom 2010. 10. 29. 16:01

홀로 책 읽으며 살리라 생각했던 제가 결혼하게 된 건 우체국 때문(덕택)입니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미팅에서 만난 파트너가 보낸 이상한 편지를 제게 배달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미팅이 끝날 때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지 못했던 제 파트너는 뒤늦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제게 두 장짜리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는 옛날 관공서에서 쓰던 누런 봉투에 들어 있었는데, 이상한 건 봉투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겉봉에 매우 큰 글씨로 쓰여 있던 주소가 엉터리였으니까요. 제가 다닌 학교는 ‘서대문구 대현동’에 있었지만 거기엔 ‘마포구’라고 쓰여 있었고, ‘동’ 이름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는 정확히 제가 다닌 학교로 찾아와 제게 전달되었습니다. 제가 우체국을 좋아하고 우편서비스를 어떤 공공서비스보다 신뢰하게 된 건 이 경험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오늘 그 신뢰를 우롱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서울 중구에 있는 모 신문사의 논설위원과 기자에게 자료를 보냈는데, 두 사람에게 보낸 자료가 모두 반송되어 온 겁니다. 신문사의 웹사이트에 주소가 ‘중구 충무로2가 50-10’으로 나와 있어 그리로 보냈는데 돌아온 것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니 신문사의 주소가 ‘중구 남대문로 2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두 개의 우편물 겉봉에는 붉은 ‘반송’ 도장이 찍히고 ‘수취인미거주’난에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우편물을 보낸 건 26일, 반송 도장은 27일자인데, 반송되어 온 건 29일입니다. 우편물을 보낼 때 한 개의 '익일특급' 요금은 2,530원, 다른 것의 요금은 2,290원이었는데, 두 우편물의 반송 요금은 똑 같이 1,500원씩입니다.

 

이미 낸 우편요금 4,820원에 반송요금 3,000원, ‘반송’ 도장으로 인해 봉투도 바꿔야 하니 경제적 손실도 적지 않지만, 이번 주에 전달하려던 자료를 다음 주에 전달하게 된 것이 더 속상합니다. ‘00일보’는 개인 집이 아닙니다. 중구를 담당하는 ‘중앙 우체국‘에선 ’00일보‘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매일 언론기관으로 배달되는 우편물의 양은 엄청나니까요. 물리적으로 따져도 ’충무로 2가’와 ‘남대문로 2가’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우체국 콜센터(1588-1300)에 전화를 거니 근 3분을 기다린 후 상담원과 연결이 됩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상담원은 집배원이 ‘임의로’ 다른 주소로 배달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겉봉에 젹혀 있는 주소지에 받을 사람이 없으니 ‘수취인미거주’로 반송된 것이라는 겁니다. ‘00일보’는 언론기관인데다 같은 중구에 있으니 ‘동’ 이름이 틀렸다고 해도 배달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니 ‘임의로’ 배달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남궁 민 우정사업본부장이나 우편 업무 담당 공무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우편서비스는 뒷걸음질을 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겪은 일과 같은 일이 34년 전 봄에 일어났다면 제 인생은 크게 달라졌을 겁니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소슬한 금요일이지만 신뢰하던 관공서 하나를 잃은 제 기분은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