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개나리가 만발하니 미세먼지 많은 세상이 좀 환해지는
것 같습니다. 꽃 등 밝은 거리를 걸으며 '고향의 봄'을 흥얼거리다
보니 문득 가슴이 아픕니다. 노래를 작곡한 난파 홍영후 때문입니다.
며칠 전 자유칼럼에서 보내준 권오숙 박사의 '뜻밖의 홍난파'를
읽을 때도 그랬습니다. 작곡가로만 알고 있었던 난파가 번역가이고
소설가이며 잡지 편집자였다는 사실이 놀라운 만큼 그가 '친일파'로
불린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 중엔 친일파가 아주 많습니다.
겨우 43년을 살고 간 난파...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을지, 그의 '친일'이 그의 공적을 지울 정도로 중대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래에 권 박사의 글을 옮겨둡니다.
뜻밖의 홍난파
봄이 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듣는 애창곡이 있습니다. 바로 홍난파 작곡, 이은상
작사의 <봄처녀>입니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거리를 걷다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고,
아울러 그의 독특한 이력이 떠올랐습니다.
홍난파(洪蘭坡, 1898~1941) 하면 다들 작곡가라고 알고 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 봉선화」나 「고향의 봄」 같은 노래를 남긴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라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는 음악가이기 이전에 소설 창작과 번역, 잡지 편집 활동에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력으로 볼 때 그는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라 근대적 문화 지식인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홍난파는 일본 도쿄의 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공부하며 서양 음악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 일본 유학생 사회에서는 서양 문학을 읽고 번역하여 자국에 소개하는
일이 지식인 청년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홍난파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문학잡지와 유학생 동인지에 참여하며 글을 썼고, 소설 창작과 번역을 했습니다.
귀국 후에도 음악 활동과 더불어 문학 활동을 이어 가며, 단편 소설집 『향일초』
(向日草-해를 향해 자라는 풀)를 발표했습니다.
내가 홍난파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무엇보다 그의 번역 활동 때문입니다. 홍난파는 주로
1920년대 초반에 번역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때는 한국 문학계에서 서양 문학 번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시기입니다. 새로운 문학 형식과 사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
지식인들이 번역 작업에 참여했고, 홍난파도 이러한 흐름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가 번역한 작품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Poor Folk, 1846)입니다. 홍난파는 이 작품을 1923년 『청춘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했습니다. 번역된 제목만 보면 연애소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작품을 번역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데뷔작으로, 가난한 하급 관리와 고아 여성이
주고받는 편지로 이루어진 서간체 소설입니다. 도시의 하층민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심리와 생활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닙니다. 두 주인공은
가난과 사회적 소외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감정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홍난파는 투르게네프의「첫사랑」도 번역했습니다.
20세기 초 일본에 유학하던 조선의 지식인들이 특히 러시아 문학에 강한 관심을
보였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역사적·문화적 맥락이 있습니다. 우선 당시 일본에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등의 작품이 활발하게 번역되어 지식인 사회에서 널리
읽혔습니다. 게다가 이런 러시아 문학은 사회적 억압과 가난, 인간의 도덕적 갈등을 깊이
있게 다루었기 때문에 식민지 현실을 살아가던 조선 유학생들에게 강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일본 유학생 사회에서는 러시아 문학이 현실 인식과 인간 문제를
탐구하는 하나의 사상적 자극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홍난파는 이 외에도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의 역사소설
『쿼바디스』(Quo Vadis, 1896)를 「어디로 가나」라는 제목으로 『매일신보』에
1920년 3월 20일부터 총 37회 연재했습니다. 또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애사』라는 제목으로 1922년에, 『장 발장의 설움』이라는 제목으로 1923년에
박문서관에서 출간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음악 활동에 집중하게 되면서 문학과 번역 활동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습니다.
홍난파의 번역은 당시 대부분의 번역이 그랬듯이 일본어 번역본을 매개로 이루어진
중역이었습니다. 그것은 시대적 한계였습니다. 그런데 홍난파의 번역은 외국 문학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창작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번역하면서 접한 서간체 형식은 그의 소설 「사랑하는 벗에게」에
반영되었습니다.(이 작품을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번안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보통
도스토예프스키의 서간체 소설 형식을 모방한 창작 소설로 분류합니다.) 이처럼 번역은
그에게 새로운 문학 형식을 배우고 실험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홍난파의 번역 활동은 근대 초 한국 지식인의 문화적 열망을 보여 줍니다. 음악, 문학,
번역이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홍난파에게 그것들은 모두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을
전달하는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그의 번역 활동은 당대 지식인들이 어떻게 선진 문물을
국내에 소개하는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이랬던 지식인이
모진 시대의 격랑 속에 후일 일본 제국의 전쟁과 황민화 정책에 동조하는 글을 쓰고 관련
문화 활동에 참여한 사실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출처 : 자유칼럼(https://www.freecolumn.co.kr)
'동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무를 심자! (2026년 4월 5일) (0) | 2026.04.05 |
|---|---|
| 노년일기 281: 노인들의 직무 유기 (2026년 3월 31일) (1) | 2026.03.31 |
| 사진을 찍는 마음2 (2026년 3월 29일) (1) | 2026.03.29 |
| 사진을 찍는 마음1 (2026년 3월 28일) (1) | 2026.03.28 |
| BTS 광화문 공연이 남긴 것 (2026년 3월 24일) (1) | 2026.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