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은 사람과 닿아있습니다. 어머니가 입다 준 스웨터를 입으면 어머니가 생각나고, 동생이 만들어 준 깍두기를 먹을 땐 동생을 생각합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자에게서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의 추천을 받아 산 책을 보면 추천해준 사람이 떠오릅니다. 특정 문장을 읽으며, '이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추천한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유러피언 드림>을 읽으면 슬퍼집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책을 좋아했다는 말을 들어서입니다. 저는 그를 꼭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종로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때입니다. 퇴근 길에 집을 향해 걷고 있을 때 그가 어스름 속에서 걸어 나와 손을 내밀었습니다.
기자 노릇을 하며 무수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 보았지만 그 손의 느낌은 잊히지 않습니다. 참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정직한 손이었습니다. 그 손 덕에 그를 끝내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그가 우리의 부정직을 감당하지 못해 그렇게 서둘러 떠났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이 책을 볼 땐 분명 다른 문장에 줄을 그었겠지만 오늘 제 눈은 유독 마지막 문단에 머뭅니다.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이 쓴 '감사의 말'의 끝부분입니다. 담담한 문장이 담고 있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존경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내 아내 캐럴 그룬월드는 나의 저술 활동에 늘 영감을 주는 동반자다.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아내의 아이디어였다. 캐럴과 나는 수년간 함께 유럽을 오가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만나 구세계라는 유럽이 갖는 깊이와 풍요로움을 경험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함께 유럽을 이해하게 됐다. 아내의 통찰력은 이 책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보내고 홀로 남은 권양숙 여사는 이 책을 볼 때마다 남편을 생각할 겁니다. 부부의 종류는 책의 종류보다 많지만, 세상의 모든 부부는 인생이라는 책을 함께 쓰는 공저자입니다.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동안, 또 한 사람이 먼저 떠나고 난 후엔 그와의 사랑을 기억하며, 서로를 키우기를 그리하여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책 한 권씩을 만들어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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