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214: 타인의 죽음 (2024년 5월 12일)

divicom 2024. 5. 12. 12:18

4월만큼은 아니겠지만 5월 또한 잔인한

계절입니다. 배추꽃과 군자란과 재스민과

라일락, 아카시아... 아름다운 풍경과 향기에 

깃들인 지난한 인내와 몸부림을 생각하면

꽃 앞에서 절로 숙연해집니다.

 

5월은 또한 생로병사를 은유하는 달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입양의 날(11일),

성년의 날(20일), 부부의 날(21일), 희귀질환

극복의 날(23일)까지... 삶이라는 모자이크를

구성하는 갖가지 요소들을 다 기념합니다.

 

사람들은 스물만 넘어도 삶에 대해 아는 척을 

합니다. 20년쯤 살아보니까 인생은 이러저러한

것이더라 하는 거지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 셀 수 없이  다양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만큼 '삶의 진실'을 정의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젊을수록 쉽게 정의합니다.

 

죽음에 대해 아는 척하는 사람은 삶에 대해

아는 척하는 사람보다 훨씬 적습니다. 20년이라도

살아 보면 삶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죽어 볼 수는

없으니 죽음에 대해 아는 척할 수 없는 거겠지요.

 

사람들은 잘 살기 위해서 강연을 듣고 책을 읽고

온갖 매체가 나르는 가르침을 접합니다. 그러면

잘 죽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타인의 죽음에서 배워야 하겠지요.

어린 시절 목격했던 할머니의 죽음, 초등학교 때

목격했던 동급생의 죽음, 40대부터 겪기 시작한

친구들의 죽음, 9년 터울로 찾아온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뉴스, 책, 역사에서 간접적으로 접한 무수한 죽음들...

 

그 모든 죽음들로부터 배웁니다. 

잔꾀 부리지 않고, 비굴한 짓 하지 않고, 정신과

육체가 균형 있게 닳도록 열심히, 친절을 실천하며

살면, 그러면 잘 죽을 수 있겠구나...

 

그래도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하진 않을 겁니다.

제게 가르침을 주신 분들과 저는 다른 유전자의

조합으로 태어나 다른 상황에서 살아온 데다

저는 아직 죽어 보지 않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