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단골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셰익스피어의 <태풍(템페스트: Tempest)>을 읽었습니다.
옆방에서 떠드는 손님들 --나갈 때 보니 겨우 두명!--과
창가의 손님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에도 불구하고
화내지 않고 웃을 수 있었던 건 셰익스피어 덕입니다.
셰익스피어 생각을 하니 며칠 전 자유칼럼이 보내준
권오숙 박사의 글이 떠오릅니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글...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셰익스피어를 읽고 달라지듯 카페를 소음 공장으로 만드는
이들도 셰익스피어를 읽으면 달라질까요...
오늘 한국의 문학은 <태풍> 초입 난파의 풍경을 닮았지만
누군가는 문학의 본령을 살리려 인공호흡하듯
글을 쓰고 있을 겁니다. 그들을 응원하며 권 박사의 글을
옮겨둡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자유칼럼으로 연결됩니다.
http://www.freecolum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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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 간 셰익스피어 권오숙
전 세계 교도소에서는 온갖 종류의 교정교화 프로그램들을
시행해왔습니다. 그중 1990년대부터 셰익스피어 프로그램이
크게 유행하여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극들은
공연 관람이나 공연 참여, 혹은 읽기와 토론을 통해 많은
교정시설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교화 프로그램의 열풍은 미국 현대 언어학회가
2005년에 개최한 국제 학술회의에 '교도소 셰익스피어'
(Prison Shakespeare) 세션을 만든 데서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또 노터데임 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의 셰익스피어
연구소도 2013년에 '교도소 셰익스피어'(Shakespeare in Prisons)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효과적인 재소자 교정 수단이 된 것일까요?
셰익스피어의 극, 그중에서도 특히 온갖 범죄들이 넘쳐나는 비극들은
재소자들에게 특별한 반향을 일으키고, 그들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
힘을 지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재소자들은 야망, 탐욕, 속임수, 배반,
복수 등의 주제로 가득한 셰익스피어 극들에서 자신과 비슷한 인물들을
만나고, 자신처럼 잘못된 선택으로 파멸한 자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하는 대사는 재소자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어리석은 과거를 반추하게 만듭니다.
햄릿이 연극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세상)을 거울에 비추어주는 것”
(3막 2장 21~22행)이라고 말했듯이 셰익스피어를 만나지 않았다면
결코 들여다볼 수 없었던 자신들의 참모습을 보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행을 저지르는 주인공들이 내면의 갈등을 읊조리는 독백은
재소자들 마음속에서 들끓었던 질투심, 복수심, 탐욕 등을 고찰하게 해줍니다.
셰익스피어 극들에서 본인의 선택이나 주위의 종용에 의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재소자들은 자신들의 과거 범법 행위가 어리석은
본인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전에는 사회를 탓하고 주변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자신의 고통의 근원을
자신 밖에서만 찾던 태도에서 벗어나 자기 내부에 있는 적을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맥베스』는 살인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데 뛰어난 작품입니다.
맥베스는 마녀들과 맥베스 부인의 부추김에 넘어가 왕을 시해하고 왕권을
찬탈합니다. 우선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뜻밖의 예언은 맥베스의
내면에 숨어있던 권력욕에 불을 지릅니다. 그 예언을 들은 이후로 맥베스는
왕권에 대한 욕망을 잠재울 수가 없습니다. 왕을 죽이는 일이 끔찍한
악행이라고 느끼면서도 그런 악행을 저지르고 마는 맥베스의 모습이
범죄자들에게 공감대를 제공합니다. 이렇게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재소자들이
범죄의 충동과 동기를 직면하도록 도와줍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이 지닌 이런 놀라운 치유력을 보여주는 실례가 있습니다.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의 영문과 교수 로라 베이츠(Laura Bates)는
인디애나 주에 있는 워배시 밸리 교도소(Wabash Valley Correctional Facility)의
‘슈퍼맥스’라는 독방에 갇힌 위험한 장기수들과 2003년부터 셰익스피어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흔히 교도소 교정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재범률을 통해서 평가합니다. 로라 베이츠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셰익스피어
프로그램에 참가한 재소자들 중 석방된 후 재수감된 자가 없는데 이는
셰익스피어 작품이 지닌 치유 효과를 보여준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셰익스피어를 배우기 이전 이들이 저지른 교도소 내 범죄가 600건이 넘었으나,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후에는 단 2건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로라 베이츠는
이 특별한 경험을 책으로 출간했고 우리나라에서도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래리 뉴턴(Larry Newton)의 사연은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자신을 방치한 10대 엄마, 폭력적인 계부, 전과자 형 밑에서 자라면서
열 살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날락했습니다. 결국 18세에 살인을 저지르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에 로라 베이츠를 만났습니다.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자포자기 상태였던 뉴턴은 교도소 안에서도 폭행과 탈옥을 일삼아
위험한 재소자들만 모아 놓은 ‘슈퍼맥스’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뉴턴이 로라 베이츠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셰익스피어가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자신과 자신의 과거 행동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로그램이 끝난 뒤 “셰익스피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었습니까?”라는 설문에 “셰익스피어는 내 삶을 구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후 그는 교도소에서 매주 발행되는 소식지에 교육을 받지 못한 수감자들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소개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 소식지는 2천 명이 넘는
재소자들이 본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재소자들을 위한 셰익스피어
워크북 <죄수들을 위한 셰익스피어 가이드북>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재소자들이 공연할 수 있도록 범죄자용 셰익스피어 각색을 하기도 했는데, 그의 각색은
연기를 한 재소자와 그 공연을 관람한 재소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로라 베이츠는
이런 일련의 긍정 에너지의 순환을 지켜보며 셰익스피어를 통한 자각이 이들에게
“자기 안에 내재된 인간의 존엄성을 비쳐주는 거울”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동안 학구적이고 지적으로만 소비되던 셰익스피어가 재소자들 사이에서 불러일으키는
반향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인 얼 쇼리스의 주장처럼
이제 “인문학은 상아탑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24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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