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는 꽃 도둑 (2023년 6월 4일)

divicom 2023. 6. 4. 23:46

산책길 가로수 아래 꺾인 채 버려진 꽃이

여러 송이입니다. 노란 꽃, 하얀 꽃, 큰 꽃,

작은 꽃... 활짝 핀 얼굴도 점 같은 봉오리도

모두 꽃입니다.

 

이 꽃들을 꺾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땡볕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 가로수 밑에

이 꽃들을 놓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꽃을 꺾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 꽃을

건네받은 누구일까요?

 

시들고 있는 꽃이 가엾어서 집어들고

왔습니다. 노란 꽃은 목이 길고 하얀 꽃은

목이 짧아 한 꽃병에 꽂을 수 없으니

목 긴 꽃은 조금 깊은 병에 꽂고 짧은 꽃은

작은 술잔에 담습니다. 그래봤자 다

제 손가락 길이입니다.

 

목이 많이 말랐나 봅니다. 꽃들이 소리없이

물을 빨아들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기가

돕니다.

 

땡볕 아래 말라 죽거나 꽃병의 물을 먹다 

죽거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뭐하러

들고 왔느냐고요? 그러게요...

그 꽃들을 왜 집어들고 왔을까요?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버려진 채

죽게 둘 수는 없었던 거지요.

 

그런데, 혹시 그 꽃들이 버려진 게 아니면?

누군가가 그 어린 가로수에게 햇살에 기죽지

말고 씩씩하게 자라라고 선물한 꽃이면?

아, 그러면 저는 난생 처음 꽃 도둑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