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170: 큰 나무 아래 (2023년 6월 7일)

divicom 2023. 6. 7. 19:00

이 나라는 아직 건설 공화국이라 자꾸 큰 나무를

베거나 뽑고 작은 나무를 심습니다. 전에는 집에서

멀지 않은 대학교 앞에 큰 그늘을 만드는 나무들이

많았는데, 학교 앞에 상가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게는 산이 하나 있습니다.

한반도 남쪽 한 귀퉁이에 있는 산인데 아직 한 번도

가 보진 못했습니다.

 

젊은 시절, 지금의 룸메이트가 제 꿈을 이뤄주려고 산

산입니다. 지금보다 더 가난했던 그때이지만 제 꿈은

지금과 같았습니다. 늘 큰 나무 아래를 걷고 싶다는

것이지요. 가난한 남편이 가난한 아내의 꿈을 이뤄주려고

산 산이니 전국에서 가장 값이 싼 산이었고 여전히

그렇습니다.

 

살다가 힘들 땐 그 산을 생각했습니다. 난 언제든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그 산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곤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전보다 자주 그 산을 생각합니다.

큰 나무 아래를 산책하기가 날로 어려워지기 때문인가

봅니다. <무서록>에 나무는 클수록 좋고 늙을수록 좋다고

썼던 이태준의 마음이 제 마음입니다. 

산아... 조금만 기다려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