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끝자락, 하필 낮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는 날
저희 동네까지 찾아와준 친구의 손에 책 한 권이
들려 있었습니다.
<청사晴斯와 운여雲如의 문자 세계>.
표지부터 속살까지 온통 하얀데 '전각, 篆刻 세상을 담다'부터
'글 석한남'과 출판사 이름으로 보이는 '廣場'까지
표지의 문자들은 모두 음각하듯 눌러 쓴 글씨이고,
표지 한가운데엔 붉은 색으로 전각된 '유음遊吟'이
눈밭에 앉은 장미꽃처럼 또렷했습니다.
표지 날개 안쪽에 " '유음'은 '정본 여유당전서 定本 與猶堂全書'
19권의 "세상 밖에 놀며 읊조리다 遊吟物外"에서 유래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책을 펼치니 6.25전쟁 전후 부산의 작가들, 화가들, 지식인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던 후원자들에 대한 서술이 있고
'인장을 새겨서 제작하는 서예'인 전각 예술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20쪽에서 만난 <채근담>의 구절은 문장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청사 안광석(1917-2004)이 손수 새겨 건축가 김원에게
선물한 도장으로 붉게 찍은 글씨는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唯苦事者 方知少事之爲福
唯平心者 始知多心之爲禍
일에 시달려본 사람이라야 일의 적음이 복됨을 알고,
평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비로소
마음 쓸 일 많은 것이 화가 됨을 알리라."
청사 안광석, 운여 김광업 (1906-1976), 그리고
전란의 고통과 전후의 혼란 속에서도 전각 예술 세계를
짓고 유지, 발전시키는 데 진력했던 예술가들, 그들을
지원했던 김모니카의 가족들, 어머니를 계승한 전각 사랑으로
이 아름다운 책을 상재한 '사단법인 봄'의 김원 이사장,
한여름 더위를 쫓는 시원한 문장으로 책을 빛낸 고문헌 연구가 석한남...
이 아름답고 무거운 책을 들고 찾아와준 승정님...
감사가 더위를 잊게 함을 알았습니다.
'오늘의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텅 빈 캔버스 (2022년 8월 22일) (0) | 2022.08.22 |
---|---|
그림자 경주 (2022년 8월 7일) (0) | 2022.08.07 |
8월 시의 외침! (2022년 8월 1일) (0) | 2022.08.01 |
유산 (2022년 7월 30일) (0) | 2022.07.30 |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2022년 7월 28일) (0) | 2022.07.28 |